김봉진 대표, "한국은 혁신가의 나라…규제가 그 도전 못꺾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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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사업이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펼치는 거죠. 저의 가설(사업 모델)을 세계 무대에서 증명하겠습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사진)는 지난 30일 한국경제신문에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된 뒤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그는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았다는 점보다 내가 구상한 사업을 현실에서 증명했다는 점이 더 뿌듯하다”며 기업가의 본질과 도전정신을 강조했다.김 대표는 2010년 자본금 3000만원을 손에 쥐고 우아한형제들을 일으켰다. 길거리에서 모은 5만 장의 음식점 홍보 전단을 기반으로 개발한 앱(응용프로그램) ‘배달의민족’이 대박을 터뜨렸다. 13일 독일 동종 업체 DH에 회사를 매각했다.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4조7500억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그는 아시아 11개국의 배달 앱 사업을 이끄는 우아DH아시아 대표를 맡게 된다.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혁신이라고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로봇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혁신도 있다”며 “불편을 해소해주는 서비스에 이용자가 기꺼이 대가를 지급하면 그게 바로 혁신”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타다’도 같은 맥락의 혁신이라고 평가했다.최근 규제를 둘러싼 갈등 표출이 잦은 것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2016년 발족한 스타트업들의 규제 이슈 대응 기구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직을 4년째 맡고 있는 대표적 ‘규제 파이터’로 꼽힌다.
김 대표는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는 창업가가 많을 때 규제 이슈가 부각된다”며 “공무원의 힘이 세고 법체계도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한국만큼 첨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을 ‘혁신가들의 나라’라고 희망적으로 평가한 배경이다.세계 시장 도전하려 獨기업에 매각…'골목 배달' 넘어 '글로벌 배달' 시동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자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길거리에서 모은 ‘찌라시’를 모아 앱(응용프로그램)에 집어넣는 비즈니스 모델(배달의민족)로 한국 요식업계의 판도를 바꿔서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돼 엑시트(자금 회수)에 성공했다는 점도 창업자의 가슴에 불을 지핀 요인으로 꼽힌다. 우아한형제들이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4조7500억원에 이른다. 그는 올해 새로운 출발을 한다. 딜리버리히어로 아시아 총괄대표 자격으로 11개국의 배달앱 사업을 진두지휘한다. 31일 서울 잠실 사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전례가 없는 방식의 엑시트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내에서 상장해 한국을 기반으로 사업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비만 하다가 고립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죠. 고민 끝에 ‘글로벌 공룡’과 손잡고 해외로 나가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의 ‘배민’이 아시아 11개국으로 영토를 넓혔다고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배달의민족’ 주인이 독일 회사로 바뀐 것을 두고 뒷말이 많은데요.“우리 회사 별명이 ‘게르만 민족’이 됐죠. 우리를 향한 걱정과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결국 사업하는 사람은 성과로 증명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우리의 성공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배민 플랫폼을 이용하던 자영업자들은 수수료 부과를 걱정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인수합병(M&A) 계약을 할 때 처음으로 내건 조건이 ‘수수료와 광고비를 올리지 않는다’였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 측도 동의했죠. 저는 앞으로 아시아 11개국의 사업을 총괄합니다. 한국에서 수수료를 1~2% 올리는 것보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고삐를 죄는 게 효율적입니다. 이 논란은 우아한형제들이 한국에 상장했다고 해도 똑같았을 겁니다. 한국 주주라고 이익이 늘어나는 쉬운 길을 마다했을까요.”
▷딜리버리히어로와 인연이 깊은데요.
“딜리버리히어로 경영진과는 업계 친구 사이죠. 우아한형제들과 창업 연도가 비슷해 2011년부터 만났습니다. 매년 제가 독일을 방문했고, 그쪽도 한국을 자주 찾았죠. 우리 직원이 6명이던 시절부터 ‘살림을 합치자’고 얘기했습니다. 우린 한국사업도 제대로 못해 쩔쩔매고 있었는데 그때 그 회사는 글로벌 경쟁사를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요기요를 포함해 사들인 회사도 35개나 됩니다. 국가의 틀에 얽매이지도 않죠. 홈그라운드인 독일 법인을 매각해 1조원의 현금을 마련한 다음 마케팅비로 쓰라고 한국에 2000억원을 송금하는 게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영 스타일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이 나은 점은 무엇인가요.
“글로벌 감각과 숫자를 다루는 능력은 딜리버리히어로가 앞서지만 마케팅과 엔지니어링 능력은 우리가 한 수 위죠.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말랑말랑한 마케팅을 잘한다고 판단해 아시아 시장을 우리에게 통째로 맡긴 것입니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이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란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보기술(IT) 역량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는데요.
“하루에 배달의민족으로 들어오는 주문량이 어지간한 대형 온라인 쇼핑몰과 비슷해요. 우리가 온라인몰과 다른 점은 점심과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다는 겁니다. 매일 하루에 두 번 ‘트래픽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죠. 한국만큼 특정 지역에 주문이 집중되는 시장은 흔치 않습니다. IT 기술력이 없으면 플랫폼을 관리하기 힘들죠.”
▷최근엔 로봇 배달 사업에도 공들이고 있지 않나요.
“서울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보기 드문 도시예요. 소비자가 몰려 있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하기 좋습니다. 소프트웨어 처리도 쉽죠. 홍콩, 일본처럼 주거 형태가 복잡하면 로봇으로 배달하는 게 쉽지 않아요. 로봇 배달의 효과는 이미 증명됐습니다. 아파트 1층 앞까지는 라이더가, 1층부터 집까지는 로봇이 책임집니다. 로봇을 쓰면 라이더의 생산성이 30%가량 올라갑니다.”
▷결제 수수료를 폐지하는 등 남다른 의사결정으로 유명합니다.
“창업자인 저부터가 비주류예요. 다른 창업자들처럼 가방끈이 길지도, 남다른 기술을 갖추지도 못했죠. 남들처럼 생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박혀 있어요. 회사가 브랜드 마케팅을 하면서 내세우는 ‘B급 문화’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머리를 짧게 밀고 수염을 기른 제 외모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길로 가자고 스스로에게 암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2016년부터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의장으로서 정부에 규제와 관련해 쓴소리를 많이 해왔습니다.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스타트업 단체는 없는 것이 정상이죠. 스타트업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코스포 같은 단체는 없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규제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코스포 활동을 통해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스타트업 창업자의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타다’를 운영하는 VCNC처럼 이해 관계자의 반대로 곤란에 처한 기업도 많습니다.
“사라져갈 것에 대한 배려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가 동시에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젊은 층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혁신에 반감이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령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우리는 상황이 다르죠. 혁신을 빠르게 전파하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국내 벤처캐피털(VC)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요.
“자본시장의 체력이 약해요. 한국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은 대부분 해외 VC의 투자로 컸습니다. 유니콘 기업을 몇 개 배출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는 데 얼마큼 기여했는지도 나라의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라고 봅니다. 투자자의 하나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세계 유니콘 기업을 자신들이 키운다는 점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한국에도 GIC와 같은 투자집단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김봉진 대표는…
"남들과 다른 길 걸어야 성공한다"
B급 문화 내세운 '비주류' 경영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비주류’ 경영자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가고 싶었던 예술중학교, 예술고교 대신 수도전기공고를 택했다. 대학은 서울예술대 실내디자인과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 디자인그룹 이모션에서 첫발을 뗐다. 이후 네오위즈, NHN(현 네이버)에서 웹디자이너 경력을 이었다. 지금도 그의 명함에는 ‘경영하는 디자이너’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제 디자인 가구를 파는 사업에 나섰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수억원의 빚을 지고 모아둔 전세 보증금까지 날렸다.
네이버에서 다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김 대표는 2010년 창업에 재도전했다. 전단지를 하나의 앱(응용프로그램)에 모아보자는 게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었다. 길거리와 쓰레기통을 뒤져 반년 만에 5만 개 음식점의 메뉴를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배달의민족 앱이다.
앱을 세상에 알린 건 ‘B급 감성’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우리가 무슨 민족입니까’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등의 위트있는 광고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지금의 ‘배민’ 브랜드를 구축했다.
■ 김봉진 대표는
△1976년 전남 완도 출생
△서울예술대 실내디자인과 졸업
△네오위즈·NHN 디자이너
△2010년 배달의민족 창업송형석/최한종 기자 click@hankyung.com
기사 전문은 hankyung.com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