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현의 국회 삐뚤게 보기]집권 여당의 사회적 패권 교체론과 포퓰리즘

(조미현 정치부 기자)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넘어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사회적 패권 교체마저 이뤄내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날 당 신년인사회에서 "4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적 패권 교체까지 완전히 이룩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데 이어 연일 '사회적 패권 교체론'을 띄우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사회적 패권 교체를 언급하는 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정책이든 추진할 수 있는 집권 여당에서 이런 발언이 나왔기 때문입니다.이 원내대표가 이날 "재벌, 특정 언론, 종교인, 왜곡된 지식인도, 누구도 누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않는 공정하고 정의로는 사회를 이뤄내겠다"라고 한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중과 엘리트(또는 기득권 세력)를 구분 짓고, 이들을 공격해 도덕적 우위를 점한 뒤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으로 이해됐습니다.

이 원내대표의 말은 듣기에는 틀린 게 없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부조리를 고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다릅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당이 특정 세력을 적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건 위험해 보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법으로 바로잡으면 될 일입니다. 한국은 법치국가이니까요.

민주당의 사회적 패권 교체론은 과거 운동권 시절 계급론을 답습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패권, 즉 헤게모니를 부르주아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지배할 때 단순 힘이 아닌 제도, 사회관계, 문화 등을 통해 자발적 지배를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 규정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진보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누군가를 개혁 대상으로 삼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선언하는 집권 세력의 행태를 지지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회가 누군가, 특히 특정 정치세력이 정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민주당의 사회적 패권 교체론을 접하며 얀 베르너 뮐러의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는 포퓰리스트가 집권했을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쓰여 있습니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다른 정치적 경쟁자들을 부도덕하고 부패한 엘리트의 일부로 몰고, 일단 집권하고 나면 정당한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포퓰리스트는 그저 엘리트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만 진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일종의 종말론적 대립 상태를 꾸며내 국민을 계속 분열하고 동요시킨다. 이들은 갈등에 최대한 도덕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트럼프나 차베스와 같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포퓰리스트를 예로 든 책이지만, 한국의 현실에 비춰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