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사회([OK!제보] 추운 집에 홀로 있다던 유진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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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제보] 추운 집에 홀로 있다던 유진이…이름도 얼굴도 가짜
[이 기사는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명진(가명)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
"유진이는 엄마와 단둘이 삽니다.
엄마는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러 가고 어린 유진이는 추운 집에 홀로 있는 것이 더 무섭기만 합니다. "
최근 서대문구 주민 김명진(50대)씨가 우편함에서 발견한 기부금 모금 고지서에 쓰인 문구다.
고지서는 유명 자선단체가 가구마다 보낸 것으로, 아이가 추위에 떨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진 옆에 성금 지원을 독려하는 글과 함께 '유진이에게 18XX-XXXX(자선단체 전화번호)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세요'란 문구가 쓰여있다.
그러나 홍보 문구대로 메시지를 보내도 이를 읽을 유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진이란 이름은 옆에 붙은 작은 괄호 안의 '가명' 표시처럼 가짜 이름이고, 사진 속 어린이도 유진이가 아니라 해당 자선단체 직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엄마와 유진이가 추운 집에 홀로 있다는 스토리도 구체적인 인물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이혼 가정들의 사연을 재구성한 것이다.
해당 자선단체 홍보팀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이혼 자녀에 대한 사연을 각색한 것"이라며 "수혜자들이 신상 노출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역 사용과 각색 배경을 설명했다. 각종 자선단체가 연말을 맞아 진행하는 모금 독려 캠페인에서는 이처럼 대역 배우와 가상 이야기를 통해 가난이나 불우한 환경 등을 부각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이 대역이라고 밝히지 않거나 명시했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한 경우가 많아 실제 후원 대상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자선단체는 모금 콘텐츠 제작 인원을 채용할 때 스토리텔링 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올해 초 유명 자선단체의 모금 콘텐츠 제작 담당자 채용 공고문을 보면 '사진과 영상 등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대중의 후원을 독려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 구성이 가능한 자'로 지원 자격 요건을 명시했다. 김씨는 "애틋한 사연과 더불어 불쌍한 아이의 모습을 보니 '도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연출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속은 기분이 들었다"며 "이름만 가명인지, 아니면 사연이나 사진 속 아이까지 가상인지 고지서를 받아든 사람은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말했다.
'연출된 불행' 캠페인에 대해 SNS상에서는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지만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트위터 아이디 'ipsi****'은 "소외 계층을 도와달라는 광고를 보면 더 불쌍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경쟁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이용자 A씨는 "어린이 모델을 내세워 불쌍하도록 연출해 광고하는 것이 불편하다.
모금을 하는 건지 장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음 아이디 'gbgh'는 "슬프고 힘든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장이 훨씬 더 광고 효과가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 '꼬물****'은 "모금을 위해 (불행을) 과장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승우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는 "빈곤층에 대한 연출을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용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재연된 상황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광고에 명시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자선단체 종사자들은 모금 경쟁 과열에 따른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의 한 시립 복지단체에서 일하는 박모(38)씨는 "기부 참여자는 점점 주는데 자선단체는 늘다 보니 기부금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기부자 눈에 띄려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동정심 자극법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나눔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국민 중 기부에 참여한 비율은 2011년 36%를 기록한 이후 줄곧 감소해 2017년에는 26.8%까지 떨어졌다.
반면 행정안전부 등이 운영하는 '1365기부포털'에서 집계한 전국의 기부단체는 올해 2천600곳이 넘었다.
서울에만 전체 기부단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1천300곳이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연출된 불행 캠페인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불쌍하니 도와줘야한다'는 식의 1차원적인 홍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소외계층이 도움을 절실하게 구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연출은 이들이 가난이라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자가 아닌 수동적 존재로 묘사될 위험성이 있다"며 "이제까지는 효과적인 모금 방법이었지만 이는 이들이 자신과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제 이들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가난이라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협력자로서 존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 주요 구호단체는 동정심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는 빈곤 마케팅을 지양한 지 오래"라며 "우리나라 기부단체도 이런 방법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 기사는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명진(가명)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
"유진이는 엄마와 단둘이 삽니다.
엄마는 오늘도 일자리를 구하러 가고 어린 유진이는 추운 집에 홀로 있는 것이 더 무섭기만 합니다. "
최근 서대문구 주민 김명진(50대)씨가 우편함에서 발견한 기부금 모금 고지서에 쓰인 문구다.
고지서는 유명 자선단체가 가구마다 보낸 것으로, 아이가 추위에 떨면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진 옆에 성금 지원을 독려하는 글과 함께 '유진이에게 18XX-XXXX(자선단체 전화번호)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세요'란 문구가 쓰여있다.
그러나 홍보 문구대로 메시지를 보내도 이를 읽을 유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진이란 이름은 옆에 붙은 작은 괄호 안의 '가명' 표시처럼 가짜 이름이고, 사진 속 어린이도 유진이가 아니라 해당 자선단체 직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엄마와 유진이가 추운 집에 홀로 있다는 스토리도 구체적인 인물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이혼 가정들의 사연을 재구성한 것이다.
해당 자선단체 홍보팀 관계자는 "서울에 사는 이혼 자녀에 대한 사연을 각색한 것"이라며 "수혜자들이 신상 노출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역 사용과 각색 배경을 설명했다. 각종 자선단체가 연말을 맞아 진행하는 모금 독려 캠페인에서는 이처럼 대역 배우와 가상 이야기를 통해 가난이나 불우한 환경 등을 부각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이 대역이라고 밝히지 않거나 명시했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한 경우가 많아 실제 후원 대상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자선단체는 모금 콘텐츠 제작 인원을 채용할 때 스토리텔링 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올해 초 유명 자선단체의 모금 콘텐츠 제작 담당자 채용 공고문을 보면 '사진과 영상 등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대중의 후원을 독려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 구성이 가능한 자'로 지원 자격 요건을 명시했다. 김씨는 "애틋한 사연과 더불어 불쌍한 아이의 모습을 보니 '도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연출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속은 기분이 들었다"며 "이름만 가명인지, 아니면 사연이나 사진 속 아이까지 가상인지 고지서를 받아든 사람은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말했다.
'연출된 불행' 캠페인에 대해 SNS상에서는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지만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트위터 아이디 'ipsi****'은 "소외 계층을 도와달라는 광고를 보면 더 불쌍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경쟁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이용자 A씨는 "어린이 모델을 내세워 불쌍하도록 연출해 광고하는 것이 불편하다.
모금을 하는 건지 장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음 아이디 'gbgh'는 "슬프고 힘든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장이 훨씬 더 광고 효과가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 '꼬물****'은 "모금을 위해 (불행을) 과장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승우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는 "빈곤층에 대한 연출을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용자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재연된 상황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광고에 명시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자선단체 종사자들은 모금 경쟁 과열에 따른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도의 한 시립 복지단체에서 일하는 박모(38)씨는 "기부 참여자는 점점 주는데 자선단체는 늘다 보니 기부금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기부자 눈에 띄려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동정심 자극법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나눔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국민 중 기부에 참여한 비율은 2011년 36%를 기록한 이후 줄곧 감소해 2017년에는 26.8%까지 떨어졌다.
반면 행정안전부 등이 운영하는 '1365기부포털'에서 집계한 전국의 기부단체는 올해 2천600곳이 넘었다.
서울에만 전체 기부단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1천300곳이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연출된 불행 캠페인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불쌍하니 도와줘야한다'는 식의 1차원적인 홍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소외계층이 도움을 절실하게 구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연출은 이들이 가난이라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자가 아닌 수동적 존재로 묘사될 위험성이 있다"며 "이제까지는 효과적인 모금 방법이었지만 이는 이들이 자신과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제 이들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가난이라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협력자로서 존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 주요 구호단체는 동정심을 자극하고 심금을 울리는 빈곤 마케팅을 지양한 지 오래"라며 "우리나라 기부단체도 이런 방법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