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AI는 산업혁명의 '최신 버전'…일자리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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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틀 캐피털이코노믹스 회장 'AI 경제'

AI, 두려운 대상 아닌 자동화의 연장
1776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전개된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갑자기 높아지지 않았다. 1800년대까지 평균 1%가 고작이었다. 도시화가 진전되고 무역도 활발했지만 그만큼 국부(國富)가 늘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국가 자본이 축적되지 않았고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60여 년이 지난 1830년대 이후였다. 19세기 후반이 돼서야 자본이 본격적으로 축적됐다. 임금이 오르면서 소비가 증가했고 인구도 급격히 늘어났다. 산업혁명의 경제적 성과는 100년이 지난 후 서서히 영국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세상이 급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인류가 2000년 동안 이뤄온 업적과 지성을 하루아침에 습득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를 바라보는 이들은 AI의 발전에 두려움과 우려를 나타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 발전으로 특이점(AI가 인류 전체의 지성을 뛰어넘는 시점)에 도달하는 2045년을 인류의 ‘공포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이 그렇게 경제와 사회를 바꾸는 데는 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영국 경제학자인 로저 부틀 캐피털이코노믹스 회장이 AI를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한 《AI 경제(AI Economy)》가 미국 서점가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AI 혁명의 영향은 산업혁명 이후 일어났던 사회·경제적 변화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평가한다. AI 발전으로 고용에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오래된 직업들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AI가 이전 기술 혁명처럼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나 완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AI 비관론에 대해서도 선을 긋는다. 비관론자들은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소비가 줄어들어 결국 총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과거 20년간 세계 경제는 총수요를 약화시키는 두 가지 강력한 요소를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서구 각국은 평균 연령이 올라가면서 소비보다 저축을 선호하게 됐다. 국가 간 경제 격차도 커서 부채가 많은 국가들의 소비가 늘지 않았다. 총수요가 줄어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저자는 AI 시대와 더불어 새로운 소비가 일어나고 국가 간 경제 격차가 좁혀지며 AI 설비 투자가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경제가 오히려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은퇴자들이 대량으로 나오면서 보다 많은 소비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기계화·자동화로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AI 시대에 레저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자는 투자가 늘어나면서 금리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그는 일자리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일본과 독일, 싱가포르를 예로 든다. 이런 나라들은 로봇화가 빨리 진척됐지만 지금은 반대로 낮아지는 실업률을 고민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동화 작업의 연장으로 AI를 바라본다. 1961년 제너럴모터스(GM)가 산업로봇을 최초로 도입한 이후 기술적 진화는 계속됐다. 소프트웨어와 핵심 디자인은 계속 개선됐으며 오래된 로봇은 교체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로봇을 제작하거나 소프트웨어와 AI 응용품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사무직에서도 기계처럼 단순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직업은 없어지고 진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만 남겨질 것이다.그는 앞으로 건강·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가장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분야에서 1만 개의 직업이 사라지는 반면 23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개인 간호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예로 든다.

저자는 AI의 발전도 결국 인간의 바람과 선호에 따르는 것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일부 국가들은 로봇세 등을 도입하면서 AI를 규제하려 한다. 이들 국가의 과도한 규제는 결국 AI의 성과와 상대적 혜택을 후퇴시킬 것으로 저자는 우려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