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장애인연금 '1월 인상분' 못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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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 개정안 국회에 발 묶여올해 매달 700억여원 규모로 책정된 기초연금 인상분 등 현금지원 복지 예산이 당장 이달부터 쓰이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관련법 개정 없이 예산부터 먼저 처리했다가 여야 대치로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서 지급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백억 예산 '불용' 처리될 듯
3일 국회에 따르면 2020년도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인상 근거를 담은 기초연금법·장애인연금법 개정안과 농·어업인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이날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기초연금법은 16일까지, 장애인연금법과 국민연금법은 각각 14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이달 지급할 수 있지만 기한 안에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정부 예산안은 올해부터 기초연금을 소득구간에 따라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관련 법안이 개정되지 않으면 당장 이달 736억원의 예산이 쓰이지 못한다. 기초연금 인상분 지급 대상인 163만 명을 포함, 약 200만 명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회와 충분한 논의 없이 현금복지 예산을 늘려놓은 뒤 야당을 탓하면서 법안 처리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정부, 예산 먼저 통과 시키고 法처리 압박
연금 지급 5개월 미뤄진 2년前 '판박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오는 6일 올해 예산집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새해 첫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연다. 당·정·청은 이 자리에서 야당에 기초연금법·장애인연금법·국민연금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협조를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초연금 인상분 등 지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이야기다.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기초연금법 개정안이 오는 16일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약 163만 명의 노인이 기초연금 인상분을 받지 못하게 된다. 개정안은 기초연금 월 30만원 지급 대상을 현행 소득하위 20%에서 소득하위 40%까지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득하위 20~40%가 기존 월 25만원에서 5만원을 더 받게 된다.장애인연금법 개정안은 14일까지 통과돼야 약 2만 명의 수급자에게 인상분이 지급된다. 개정안은 중위소득 50% 이하인 차상위계층과 주거·교육급여 수급자에 대해 연금 지급액을 기존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당 개정안이 기한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모든 기초연금·장애인연금 수급자들에 대한 적정급여 지급도 어려워진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물가상승률을 연금액에 반영하는 시기를 매년 4월에서 올해부터는 1월로 당겼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1월 지급이 무산되면 물가상승률을 연금액에 반영하는 시기가 늦어져 적정급여 계산을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8년에도 관련 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당초 약속한 것보다 반년가량 늦게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을 인상했다. 정부는 2017년 9월 기존 20만원 수준이었던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액을 소득수준에 따라 25만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기초연금법과 장애인연금법을 발의했다. 2018년 4월부터 기초연금이 인상될 것이라고 홍보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2018년 9월에서야 인상분이 지급됐다. 이 때문에 총 270억원이 불용됐다.국민연금법 개정안도 14일까지 통과돼야 이달 농어업인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36만 명의 농어업인이 월 평균 4만1484원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게 된다. 개정안은 지난해 말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농어업인 연금보험료 지원기한을 2024년 말까지 5년 더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거법도 없이 예산안부터 올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자칫하면 이미 확정된 예산이 법적 근거가 없어지면서 고스란히 못 쓰게 된다”며 “예산 불용은 재정 배분의 비효율성을 높이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예산을 먼저 통과시킨 뒤 이를 빌미로 관련법의 통과를 압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의 두 측면인 법안과 예산 두 개를 함께 가져가야 하는데 법안이 지연되니 예산을 우선 통과시켜 놓고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예산과 법안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