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나가고 올림픽 태극마크…새해엔 더 높이 날아야죠"

도전! 2020 - 'PGA 신인왕' 임성재

사복 입어도 알아봐 행복
우승 못했지만 작년 성적 95점
오랫동안 투어 뛰는 게 목표
“카페에 갔는데 어느 커플이 오더니 악수를 청했어요. 후드티를 입고 있었는데도 알아보시더라고요. ”
함박웃음을 짓는 임성재(22)의 모습에 또래 대학생다운 풋풋함이 가득했다. 지난달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경기 내내 무표정으로 US오픈 챔피언 게리 우들랜드(36·미국)를 압도한 바로 그 선수가 맞나 싶었다.‘족집게 예언’으로 유명한 미국 골프해설가 폴 에이징어는 지난 4일 미국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에 게재한 ‘2020시즌 다섯 가지 과감한 예상’을 통해 임성재가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승을 거두고 세계랭킹 10위(현 34위)에 들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골프계에선 임성재를 롤모델 삼아 PGA투어를 목표로 하는 선수가 부쩍 늘었다. ‘임성재 효과’라는 말도 나온다. 경기 용인 태광CC 연습장에서 만난 임성재는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며 “시즌 동안 계속 목표를 상향 조정했고, 결국 신인상 수상에 프레지던츠컵까지 출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즈와의 악수, 지난해 최고의 순간”

임성재의 말대로다. 그는 최근 3년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2017년 말 PGA웹닷컴(2부·현 콘 페리)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해 출전권을 따낸 임성재는 이듬해 웹닷컴투어에서 2승을 거둬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지난해 PGA투어에 데뷔해 35개 대회 중 26번 커트 통과했고 ‘톱10’에만 일곱 차례 들었다.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 출전해 아시아 선수 최초로 PGA투어 신인상에 올랐다.임성재는 “지난해 우승이 없어 아쉽지만 꾸준했다는 점에서 95점쯤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승하고도 사라진 선수를 많이 봤다”며 “앞으로도 목표는 오랫동안 투어에서 뛰는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지던츠컵은 임성재의 위상을 확인한 무대였다. 그는 어니 엘스 단장의 추천으로 인터내셔널팀에 승선했다. 3승 1무 1패를 거둬 상대인 미국팀에서 인정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싱글매치플레이에서 임성재에게 4홀 차로 패한 우들랜드가 최경주 인터내셔널팀 부단장(50)을 찾아가 “임성재는 정말 훌륭한 선수”라고 엄지를 세울 정도였다.

임성재는 “15번홀까지 (스트로크 경기였다면) 6언더파를 치고 있던 셈”이었다며 “11번홀에서 앞서갈 때 (승리할 수 있다는) 느낌이 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들랜드가 경기 직후 ‘그레이트(great) 플레이어’라고 칭찬해줬다”며 “패하고도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걸 보고 진짜 대단한 선수라 느꼈다”고 전했다.임성재가 꼽은 ‘2019년 최고의 장면’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와 악수한 순간이었다. 우즈는 대부분 선수가 그랬듯 임성재가 롤모델로 삼은 선수다. 그는 “생각보다 우즈의 악력이 셌다”며 “모든 선수의 꿈인 우즈와의 동반 라운드를 새해엔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저에 집중…상승세 도쿄올림픽까지

임성재의 달라진 위상은 그의 일정표를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꿈의 무대’ 마스터스 초청장까지 받으면서 4대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모두 확보했다. 오는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도 한국 남자 골프선수 대표로 출전할 것이 확실시된다.임성재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GC가 메이저대회 코스 중 한국 선수와 가장 잘 맞는 코스라고 들었다”며 “지난해는 빡빡한 일정으로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충분히 휴식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대회 전 1주일 정도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에는 국가별로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 두 명이 출전한다. 임성재는 현재 한국 선수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다. 이변이 없는 한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경험이 있는 데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열린 PGA투어 조조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를 기록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임성재는 “대표팀에 선발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촘촘한 일본 골프장 잔디는 내가 좋아하는 잔디기 때문에 출전하면 (메달)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인=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