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실장' 노영민 1년…삼성전자 송전탑 물밑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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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재계 '오작교 역할'‘왕(王) 실장’ ‘원조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사진)이 8일 임기 1년을 맞았다. 노 실장은 ‘경제를 아는 핵심 참모’라는 이점을 살려 초반부터 신산업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시스템반도체·미래차·바이오 등 문재인 정부 3대 핵심 신성장동력을 추려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간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사이 경내 위기 상황 발생에 대비해야 하는 자리로 여겨졌던 ‘비서실장’의 고정관념을 깨고, 3개 신산업 관련 현장에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하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경제계와 잦은 회동에도 기여
군기잡기에 靑직원 볼멘소리도
노 실장이 5년간 풀리지 않던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송전탑 논란’과 주민 반발에 부딪힌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재계 숙원을 풀어낸 숨은 조력자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비서는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노 실장만의 ‘참모론’ 때문이다.국회의원 3선을 하는 동안 내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맡았던 노 실장은 당시 쌓은 경제계 인사들과의 인연을 살려 비서실장을 맡은 직후에는 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창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이 공식으로 첫 출근한 날 “비서실장도 경제계를 만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며 “당당하고 투명하게 만나달라”고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 내에 팽배하던 반(反)기업 정서가 차츰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지난해 1월 ‘대기업·중견기업인과의 대화 및 산책’을 시작으로 지난 한 해 문 대통령이 눈에 띄게 재계와의 스킨십을 확대한 것도 노 실장의 영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해 1월 15일 기업인과의 대화 이후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장면에서 문 대통령의 오른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왼편에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나란히 걷는 사진 한 장에도 핵심 성장동력에 대한 메시지를 담기 위한 노 실장의 노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재계 현안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반도체, 전력 관련 지식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요즘도 경제·산업 관련 데이터를 한 장짜리 문서로 정리해 가지고 다닐 정도로 관심을 쏟고 있다.
임명 직후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을 강조하며 내부 군기잡기에 나선 이후 청와대 참모진의 근무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종석 전 실장은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도 할 말이 있으면 나서서 발언하는 스타일이지만, 다소 과묵한 노 실장은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노 실장이 ‘군기반장’으로 나서면서 점심시간 마감 때면 종종걸음으로 여민관으로 복귀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