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트럼프도, 이란도 확전 원치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라크 미군기지 공격에 '무력' 대신 '경제 제재'로 응수했다. 확전을 피한 것이다. 이란도 전날 '미국에 대한 비례 보복이 종료됐다'(외무장관 트윗)며 '무제한 보복'과 거리를 두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란의 추가 보복이 없다면 미·이란 갈등은 진정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확전을 피한 이유는 크게 다섯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미군 사망자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간밤 이란의 공격으로 다친 미국인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미군 사망자가 있었다면 여론상 트럼프 대통령이 그대로 물러서긴 힘들었을 수 있다. 둘째, 이란의 추가 공격이 없다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appears to be standing down)"고 했다.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전날 공격 후 트윗을 통해 이번 공격을 '자위적 방어조치'로 명명하며 "우리는 긴장 고조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미국이 반격하면 이란이 반격한다고 봤을 수 있다. 이란은 전날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 다음 표적은 두바이와 (이스라엘)하이파"라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이 보복하면 미국은 신속하고, 완전하고, 비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반격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실제 반격에 나서면 피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재선에 미칠 영향이다. 미국 경제와 증시는 지금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미·이란 전면전이 벌어지면 경제와 증시가 흔들린다. 전쟁이 정치적으로 재선에 유리할 수도 있지만 경제가 망가지는 불확실성을 감수하기보단 상황을 평화롭게 관리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다섯째, 지금 한발 물러서도 나쁠게 없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 모의' 등을 이유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해 '여차하면 무력을 쓸 수 있다'는걸 행동으로 보여줬다. '트럼프의 위협은 말뿐'이란 지적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여기서 더 나가면 '무모하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이란과의 긴장 고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이란도 보복 차원에서 미군기지를 공격했지만, 도발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공격 지점이다. 이란이 공격한 이라크 내 미군기지 알아사드와 에르빌은 미군 밀집 지역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혁명수비대가 이라크 미군기지 공격 1시간쯤 전 이라크 총리에게 공격 계획을 구두로 통보했고, 이라크는 미국에 사전경보를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군이 사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다. 이란은 공격 감행 후 "미군 사망자만 8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내수용'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피격으로 반미여론이 높아진만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만, 세계 최강 미군과 정면대결을 벌였다간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다. 이란이 외관상 미국에 보복을 가하면서도 실질적 피해는 주지 않는 선에서 도발을 자제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아직까진 이란의 추가 보복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간밤에 우리는 미국의 뺨을 한 대 때렸을뿐"이라며 "보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란 군부는 그동안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에 대한 보복이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동 내 친이란 무장조직 역시 '대미 항전'을 선언했다. 이란이 노골적으로 미국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친이란 테러단체나 대리조직이 도발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비례적 대응을 끝냈다고 밝혔지만 이는 이란이 군사작전을 끝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미 당국자 발언을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