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속도 못따라 가겠다"는 中企 호소에 귀 막아선 안 된다

화관법·화평법에 노동 규제 겹쳐 폐업 위기 몰려
기업 현장애로 해소하는 데서 규제개혁 출발해야
환경 관련 규제가 날로 강화되면서 이에 대처할 시간이라도 달라는 중소기업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8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 초청 간담회에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과 관련된 비용 급증으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정부가 적극 나서 부담을 줄여달라고 주문했다.

중소기업인들은 화평법상 의무 등록 물질이 기존 2000종에서 1만6000종으로 급증하면서 조사 등록에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소기업은 관련 전문가가 없어 외주 업체에 의뢰해야 하는데 비용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화관법은 올해로 5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유해물질 취급 공장의 안전기준이 종전 79개에서 413개로 늘었다. 사소한 법 위반으로도 1년 넘게 공장을 세워야 할 수도 있게 됐다.중소기업인들은 안전을 강화하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감당하기에 벅차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과 적절한 규제 속도 조절이 절실하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다.

화관법·화평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을 계기로 규제를 대폭 강화했지만 산업계 영향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졸속 개정됐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화관법상 사고 발생 시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물게 한 것이나 공장을 멈추도록 한 것은 모든 기업에 매우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더욱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 대상 조사에서 91.4%가 ‘화관법 규제 차등화’를 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관련 설비투자를 감당 못하는 중소기업은 폐업까지 검토할 정도다. 지난해 말 정부가 화학물질 등록 관리와 관련, 현장애로 해소 방안을 내놓았지만 심사기간을 단축한 정도여서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중소기업들은 지금 같은 속도로 규제가 일률적으로 강화되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질 뿐 아니라 일본과 맞서 소재·부품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환경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제기된 중소기업에 대한 화학물질 등록 관련 비용의 국가 지원과 유독물 지정기준 완화 등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하는 이유다.

환경 분야뿐 아니라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노동분야 규제 역시 영세기업과 소기업에 대해서는 유예나 적용 완화 등 속도조절이 절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경북 규제자유특구인 포항을 찾아 “정부는 자치분권으로 지역의 힘을 키우면서 규제 혁신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규제 혁신은 거창한 구호를 외치고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 것보다는 기업 현장의 어려움을 찾아 해결해주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중소기업계의 호소에 더 이상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