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委 내달 공식 출범…"이재용 부회장이 자율·독립성 약속했다"

법조계·시민단체·학계인사 등
삼성에 비판적 인물 위주 구성

초대 위원장에 김지형 前 대법관
"삼성이 변혁의지 드러내 수락"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이 9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준법감시위원회 구성 및 성격, 운영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의 윤리경영을 지원하는 외부 상설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다음달 초 공식 출범한다. 진보 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위원장)을 포함해 위원 7명 중 6명을 외부 인사로 구성해 독립성을 강화했다. 경영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주문한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등 이른바 ‘법원 숙제’에 답을 내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지형 위원장은 9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준법감시위 구성과 지위, 운영 원칙 등을 발표했다. 법조계와 시민단체, 학계 인사 7명으로 꾸려진 준법감시위는 삼성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김 위원장은 진보성향의 법조인으로 삼성전자 백혈병문제 조정위원장(가족대책위원회 추천)을 맡아 11년 동안 끌어온 백혈병 논란을 2018년 마무리지었다. 대법관 시절엔 사회적 약자 편에 선 판결을 많이 남겼다.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대기업 수사 경험이 풍부하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과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노사 문제에 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다.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공정거래와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참여한다. 김 위원장은 “7명 중 6명이 외부 위원”이라며 “이 고문 선임 역시 삼성과 관계없이 내가 독자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는 이사회 의결 사항의 법 위반 여부 검토와 법 위반 신고 접수, 조사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달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7개 삼성 주요 계열사와 준법감시 협약을 맺는다. 다음달 공식 출범하는 준법감시위는 삼성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포함해 주요 의사 결정에 문제가 없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받고 조사하는 권한도 갖는다.준법감시위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신고를 접수하고 주요 활동 사항도 외부에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후원금, 협력업체와의 거래 등 공정거래 분야와 뇌물수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는 물론 노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단 국정농단과 노조 와해 등 준법감시위 출범의 도화선이 된 사안은 조사 대상에서 빠질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 내내 ‘자율’과 ‘독립’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삼성 입김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면피용으로 꾸려진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을 감안했다는 관측이다. 이 부회장의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오는 17일 4차 파기환송심 공판일까지 이 부회장에게 준법경영 강화 방안 마련을 요구한 상태다. 그는 “최근 이 부회장을 만났고,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의 자율과 독립을 확약하면서 삼성의 변혁 의지를 확인했다”고 위원장 수락 이유를 설명했다.

준법감시위가 주요 경영 사항의 법 위반 여부를 직접 조사한다는 점에서 초법적 기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이 회사 외부로 유출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보형/황정수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