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식별 개인정보 활용"…IT·핀테크·의료 '데이터 新산업' 재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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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 만에 국회 통과…"산업계 묵은 숙제 풀렸다"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며 기업이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개망신법’으로 불렸던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개정해 ‘데이터 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놓겠다는 얘기였다. 이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는 데 법안 발의 후 꼭 14개월이 걸렸다.
동의 안받아도 정보 활용 가능
가명정보, 익명정보 활용 가능해져지금까지는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뿐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했다. 본인 동의 없이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사업을 하면 정보통신망법, 금융회사엔 신용정보법이 적용됐을 뿐 개인정보의 동의 없는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똑같았다.
이번 법 개정으로 기업들은 제한적으로나마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의 상당 부분을 가린 가명정보는 학술과 통계처리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홍OO, 1977년 6월생, 남성, 서울 강남구, 2020년 1월 신용카드 사용금액 127만원’처럼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개인을 특정하기 어렵게 한 게 가명정보다.익명정보의 개념을 명시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름, 생년월일 등 사람을 구분하는 핵심 식별 정보를 철저히 제거한 것을 말한다. ‘남성, 40대, 2020년 1월 신용카드 사용금액 127만원’ 정도만 남기는 식이다. 익명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상업적으로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신사업 재가동하는 기업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은 ‘데이터 3법’ 통과를 계기로 신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말 대웅제약, 분당서울대병원 등과 헬스케어 합작법인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했다. 카카오도 서울아산병원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의료 빅데이터 업체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를 세웠다.지금까지 이들 헬스케어 업체는 ‘개점 휴업’ 상태였다. 관련 법령상 의료 데이터 분석에 필수적인 개인정보 활용에 제한이 컸다. 업계 관계자는 “가야 할 길이 멀지만 AI 기반 헬스케어 사업이 ‘첫걸음’은 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금융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 나설 예정이다. 은행 등 기존 금융권에 집중돼 있는 정보를 소비자 선택에 따라 핀테크 업체도 활용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주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한 핀테크 업체 대표는 “금융 데이터에 의료, 소비, 공공 등 이종 데이터를 ‘교배’하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개인의 병원 의료 기록과 의약품 구매 내역을 분석해 건강 컨설팅을 해주고, 보험 추천을 제공하는 업체가 생길 수 있다.
핀테크 업체들의 서비스도 한층 더 정교해진다. 복잡한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소비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서다. 토스 등 핀테크 앱(응용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대출금리 비교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소비자가 금융회사에서 대출금리를 제안받는 ‘역경매’ 서비스도 가능해진다.카드회사들은 소비자의 구매 내역을 분석해 신용카드를 추천할 수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데이터의 가치는 연결되는 정보의 양으로 결정된다”며 “데이터를 마케팅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은 비용이 줄어들고 소비자 편익은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이 더 중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욱 정교한 마케팅이 가능해지고 AI, 빅데이터와 결합한 새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당장은 뱅크샐러드와 같은 핀테크 기업이 혜택을 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정보를 보유한 모든 스타트업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 활용 범위가 모호해서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사업에 입찰할 때 빡빡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의 구체적인 활용 범위를 규정하는 시행령 등이 더욱 중요하다”며 “가명정보를 통계 분석 등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산업 현장, 소비자 서비스 등의 용도로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김주완/김대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