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검찰, 곤 전 회장 출국금지…'사실상 보호조치' 분석(종합2보)

곤 전 회장 "레바논 재판제도, 일본보다 나을 것으로 확신"
레바논 검찰, 일본에 자료 요청…레바논과 일본, 신병 인도 놓고 마찰

레바논 검찰은 9일(현지시간) 일본에서 형사 재판을 앞두고 레바논으로 도주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日産)자동차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레바논 매체 '데일리스타'와 AP, AFP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레바논 사법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검찰이 곤 전 회장을 일본에서 받은 범죄 혐의와 관련해 약 2시간 동안 심문한 뒤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사법부 소식통들은 외신에 "검찰이 일본 당국에 그(곤 전 회장)에 관한 (사건) 자료를 요청했다"며 "그는 자료가 일본에서 도착할 때까지 출국이 금지된다"고 전했다.

레바논 검찰은 이날 곤 전 회장의 비리 혐의와 함께 2008년 이스라엘 방문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곤 전 회장은 2008년 초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협력을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고 밝힌 적 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2006년 한달 동안 전쟁까지 치른 적대관계다.
AP는 레바논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가 곤 전 회장의 이동을 제한하지만 그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곤 전 회장은 이날 검찰 조사를 마친 뒤 현지 TV와 인터뷰에서 "나는 레바논에 왔다.

레바논 정부와 사법당국에 협조하겠다"며 "레바논의 재판 제도가 일본보다 나을 것으로 강하게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레바논 검찰이 자신의 모든 혐의에 대해 심문했다며 자신이 이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제출할 준비가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은 레바논 당국에 곤 전 회장에 대한 수배를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이 일본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터폴의 수배 요청에도 곤 전 회장에 대한 체포 여부는 레바논 당국에 달렸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이 합법적으로 입국했다고 밝히며 신병 인도에 소극적이다.

레바논과 일본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자칫 양국 간 외교 갈등이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쿠보 다케시(大久保武) 레바논 주재 일본 대사는 지난 7일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만나 곤 전 회장의 도주에 관해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협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아운 대통령은 "전면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고 언급했으나 이번 사건에 관해 레바논 정부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다.

곤 전 회장은 지난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검찰의 기소는 근거가 없고 조사 과정에서 반인권적 대우를 받았다며 일본 사법당국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법정에 설 준비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9일 방송된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일본 탈출 동기에 대해 "나는 어딘가에 숨으려고 일본을 떠난 것이 아니다"라며 "나는 정의를 찾으려고 일본을 떠났다.

잃을 것이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곤 전 회장은 프랑스와 레바논, 브라질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부인은 레바논 출신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지난달 29일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개인용 비행기로 터키 이스탄불로 도주한 뒤 이스탄불에서는 다른 개인용 비행기를 타고 레바논으로 이동했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유가증권 보고서 허위기재와 특별배임 등 혐의로 일본 사법당국에 구속됐다가 10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작년 3월 풀려났다. 이후 한 달여 만에 재구속된 뒤 추가 보석 청구 끝에 5억엔의 보석금을 내고 작년 4월 풀려나 사실상의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