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기다린 끝에…브렉시트 마지막 걸음만 남겼다

英 하원서 EU 탈퇴협정 법안 통과…31일 브렉시트 단행 눈앞
연말까지 전환기간 적용…무역협정 등 미래관계 합의 난항 예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9일(현지시간) 제3독회 표결에서 가결되면서 마침내 영국 하원의 벽을 뛰어넘었다.사실상 오는 31일 예정된 브렉시트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브렉시트 이후에도 EU와의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이라는 또다른 과제가 남아 있어 EU와의 완전한 결별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 국민투표 후 3년 7개월…조기총선으로 해법 찾아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전체의 52%인 1천740만명이 EU 탈퇴에, 48%인 1천610만명은 EU 잔류에 표를 던져 브렉시트를 결정했다.이후 브렉시트 '구원투수'로 투입된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지난 2017년 3월 29일 리스본 조약 50조에 의거해 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하면서 영국은 지난해 3월 29일 EU를 떠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양측은 치열한 공방 끝에 2018년 11월 브렉시트 협상을 마무리했다.

구체적으로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EU 탈퇴협정에 합의한 데 이어,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의 골자를 담은 '미래관계 정치선언'에도 합의했다.그러나 지난해 1월과 3월 각각 열린 영국 하원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안전장치'(backstop)에 대한 반발 등으로 브렉시트 합의안은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메이 전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만 따로 하원 표결에 부쳤지만 역시 의회를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자 메이 전 총리는 EU 측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고, 브렉시트는 두 차례 연기 끝에 지난해 10월 31일로 미뤄졌다.이에 급격히 리더십이 약화된 메이 전 총리는 결국 사퇴를 결정했고,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진영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경선 끝에 보수당 당대표로 선출돼 총리직을 승계했다.

존슨 총리는 취임 이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합의 여부에 관계없이 지난해 10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예정일을 2주가량 앞둔 10월 중순 EU 특별정상회의 직전 극적으로 재협상 합의에 성공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 역시 합의안 승인을 위한 하원 표결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했다.

존슨 총리는 현 정치권 지형 아래에서는 더이상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하원 과반 의석 확보를 목표로 조기 총선 카드를 빼 들었다.

본격적인 총선 캠페인이 펼쳐지자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를 공약으로 내걸고 EU 탈퇴 지지자들을 공략했다.
반면 제1야당인 노동당은 EU와의 재협상 및 제2 국민투표 개최라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존슨 총리의 승부수는 지난달 12일 총선에서 보수당이 하원 과반 의석 기준(326석)을 훌쩍 뛰어넘는 365석을 확보하는 압승으로 이어졌다.

존슨 총리는 크리스마스 이전 EU 탈퇴협정 법안을 상정해 제2독회를 통과한 데 이어 이날 제3독회 표결마저 가결되면서 지루하게 이어져 온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타개했다.

◇ 연말까지 전환기간 적용…미래관계 협상 시한 촉박 우려
오는 31일 브렉시트가 단행되더라도 영국과 EU 간 관계에 당장에 큰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양측이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오는 2020년 말까지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전환기간에 영국은 현재처럼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잔류에 따른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주민 이동도 현재처럼 자유롭게 유지된다.

영국은 EU 규정을 따라야 하며, 분담금 역시 내야 한다.

전환기간 양측은 기존에 합의한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기반으로 무역협정을 포함해 안보, 외교정책, 교통 등을 망라하는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문제는 협상 시한이다.

당초 영국이 예정대로 지난해 3월 29일 EU를 탈퇴했다면 전환기간은 약 1년 8개월에 걸쳐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잇따라 부결하면서 브렉시트 예정일은 세 차례 연장돼 오는 31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전환기간은 당초 예정보다 훨씬 짧은 11개월만 적용된다.

과거 EU가 캐나다 등과 벌인 무역 협상에 수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11개월에 불과한 전환기간에 영국과 EU가 미래관계 합의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초 양측 합의에 따르면 전환 기간은 한 차례에 한해, 1∼2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영국 정부가 2020년 7월 1일까지 EU에 연장 요청을 해야 하며, 영국과 EU 모두가 이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EU 탈퇴협정 법안을 새롭게 내놓으면서 전환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전환기간이 끝나는 연말까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된다.

이미 브렉시트를 단행한 상황인 만큼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는 아니지만 사실상 '노 딜' 브렉시트와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EU 측에서는 이미 협상 시한이 촉박하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전날 존슨 총리와의 회동에 앞서 전환기간 연기를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녀는 EU가 관세와 쿼터(할당량), 덤핑 등이 없는, 전례 없는 수준의 넓은 범위를 가진 무역협정을 영국에 제안할 것이라면서도, 포괄적인 무역협정을 연내 협상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존슨 총리는 전환기간 연장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양측이 어떤 미래관계를 맺더라도 여기에는 규제일치나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관할권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결국 EU 탈퇴협정 법안 통과로 수년간 지속된 브렉시트의 장애물은 제거됐지만, 영국이 EU와 완전히 결별하기 위해서는 미래관계 협상 합의에서 또다시 지루한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