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 PCB·2차원 다이아몬드…'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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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핀, 어떤 소재이길래‘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 발견에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돼 있는 그래핀 강도는 강철의 200배, 전자 이동도는 실리콘의 100배에 달한다. 게다가 열 전도도가 좋고 유연해 잘 휘어진다. 현존하는 소재 중 가장 얇다.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2차원 결정’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상용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그래핀에 붙은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뗄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 성과가 나왔다.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전자이동도는 실리콘의 100배
‘그래핀 잉크’ 제조기술 기업에 이전그래핀은 플렉시블 터치패널, 디스플레이용 투명전극, 2차전지 등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거나 문지르면 전자기기가 작동하는 것은 투명전극이 미세 압력에 따른 전위차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투명전극에는 인듐주석산화물(ITO)이 주로 쓰인다. 그런데 비싸고 잘 깨지며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핀 대체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도 전극 소재를 그래핀으로 바꾸면 용량과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나노융합기술연구센터 이건웅 전기재료연구본부장, 정희진 책임연구원 팀은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전도성 금속잉크’ 대체기술을 그래핀으로 확보하고 이를 대성금속에 기술이전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전도성 금속잉크는 전자기기의 회로, 전극 등을 구성하는 핵심 재료다. 시판 중인 전도성 잉크의 주 소재는 은이다. 은은 전기 전도도가 높지만 비싸 이보다 가격이 10분의 1가량 저렴한 구리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이어져왔다. 그러나 구리는 은보다 녹는점이 높아 불안정하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 표면에 산화막이 쉽게 생겨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연구팀은 그래핀의 우수한 물성에 주목하고 이를 구리에 합성해 ‘구리-그래핀 복합 전도성 잉크’를 만들었다. 구리 입자 표면에 여러 층의 그래핀을 용액 안에서 직접 합성할 수 있는 ‘액상합성법’을 세계 최초로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방법으로 고점도 잉크를 만들고 스크린 인쇄를 통해 회로기판에 쓰이는 고해상도 패턴 막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 ‘광열소성’을 이용해 은과 비슷한 수준의 전기전도도를 나타내는 패턴 전극을 제조했다. 광열소성은 1000분의 1초가량의 짧은 시간에 높은 에너지를 갖는 빔을 쏘면 이 에너지를 매개로 미세입자들이 덩어리로 뭉치는 현상을 말한다.이 본부장은 “구리-그래핀 복합 전도성 잉크는 전자파 차폐필름, 태양전지, 연성인쇄회로기판(플렉시블 PCB), 무선 주파수 인식(RFID) 안테나, 웨어러블 신축성 전극 등에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착수기술료 5억5000만원, 경상기술료 1.5% 조건으로 대성금속에 이전됐다. 대성금속은 올 1분기 이 잉크를 월 10t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노윤구 대성금속 대표는 “구리-그래핀 복합 전도성 잉크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로 자동차 만들 수 있을까
자동차 연비와 강도도 그래핀으로 높일 수 있다. 그래핀으로 경량 복합소재를 만들어 ECU(엔진 자동변속기 등을 제어하는 장치) 등에 쓰면 기존 대비 자동차 무게가 15%가량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또 대면적 강판에 그래핀 용액을 균일하게 코팅하면 경미한 접촉사고에는 스크래치가 아예 나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다.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로드니 루오프 UNIST(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과 특훈교수는 그래핀을 다이아몬드 박막으로 바꾸는 데 최근 성공했다. 다이아몬드 박막은 그래핀과 다이아몬드의 장점을 모두 지닌 신소재다.
그래핀과 다이아몬드는 둘 다 탄소 원자로 이뤄져 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주변 탄소 원자 3개와 결합해 육각형 벌집 모양을 이룬 2차원 평면 소재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 1개가 주변 탄소 원자 4개와 결합한 정사면체가 상하좌우로 끝없이 반복되는 입체 구조로 돼 있다. 이 같은 구조 차이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반면 다른 성능은 그래핀과 비슷하다.
그래핀은 주로 화학기상증착법(CVD)으로 만든다. 높은 온도에서 기체 상태 탄소를 금속(구리 니켈 등)기판에서 성장시키면 분해와 재결합을 반복하면서 그래핀이 만들어진다. 이때 결정구조 등에 따라 그래핀의 성능이 갈린다. 수박을 자르는 방향에 따라 단면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연구팀은 CVD를 이용해 다층 그래핀을 성장시킨 뒤 불소 기체를 주입해 필름 형태의 다이아몬드, 일명 ‘다이아메인’을 상온에서 세계 최초로 합성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관계자는 “그래핀을 다이아메인으로 변환시키는 연구는 많이 보고됐지만 제조 과정이 복잡하거나 구조에 결함이 있는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 연구는 간단한 공정으로 결함을 최소화했다는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 기계적 특성을 조절할 수 있는 대면적 단결정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후속 연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실렸다.
■ 그래핀
탄소 원자들이 육각형 구조로 연결돼 있는 하나의 층을 말한다. 흑연(그래파이트)을 가장 얇게 벗겨낸 한 단위라고 볼 수 있다. 2차원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두께는 나노미터 수준으로 얇으면서도 강도가 다이아몬드의 2배에 달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류가 잘 흐른다. 2004년 발견됐으며 2010년 노벨물리학상 주제로 선정됐다. 미국물리학회가 ‘미래 정보기술을 바꿀 가장 주목할 신소재’로 꼽는 등 전 세계 기업과 학계, 연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