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즌 '웃는 남자'…단단해진 서사와 환상적 무대

빅토르 위고 소설 원작…상위 1%가 지배하는 17세기 영국 사회 풍자
첫 무대 규현 "초연 때 객석에서 본 무대에 서 있어 행복해"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
빅토르 위고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제는 명확하다.

상위 1%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신분 차별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이야기한다.

입이 찢어져 항상 웃는 얼굴인 '그윈플렌'은 그 중심에 있는 인물. 아기 때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스코에 팔려 가 괴상한 얼굴을 갖게 됐다. 극은 콤프라치스코 일당이 어린 그윈플렌을 남겨두고 폭풍이 이는 바다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번개가 번쩍이고 거대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서 죽음을 직감한 일당은 하늘에 속죄의 편지를 써 유리병에 넣은 후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홀로 남겨져 떠돌던 그윈플렌은 차가운 눈밭에서 얼어 죽은 엄마 품에 안긴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데아'란 이름을 붙여준다.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가 둘을 거두고 함께 유랑극단에서 살아간다.
기이한 미소 덕분에 유명한 광대가 된 그윈플렌은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의 구애를 받고, 우르수스와 데아는 귀족의 부유한 삶과 유랑극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윈플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던 중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고문소 '눈물의 성'에 끌려간 그윈플렌은 그곳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영국 최고 귀족 가문의 어릴 적 사라졌던 후계자였던 것.
하룻밤 사이에 가장 밑바닥에서 최상위 귀족으로 신분이 급상승한 그윈플렌은 귀족의 삶을 즐기며 생활한다.

그윈플렌이 죽었다는 거짓말에 우르수스는 절망하고, 데아는 그의 부재에 병들어간다.

그리고 상위 1%를 향한 그윈플렌의 저항이 시작된다.
2018년 뮤지컬 시상식 4개에서 모두 작품상을 받으며 한국 뮤지컬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웃는 남자'가 지난 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두 번째 시즌 막을 올렸다.

무대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콤프라치스코 일당이 탄 배가 침몰하는 장면에서 실제 새로 제작한 거대한 선박이 등장하는데, 어두운 천과 영상을 이용해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닥치는 바다와 난파 장면을 실감 나게 연출했다.

새하얀 천을 둘러쓴 배우들이 표현한 눈보라와 눈 쌓인 풍경, 가든파티가 열리는 귀족의 호사스러운 저택과 침실, 그윈플렌이 공연하는 남루하지만 즐거운 분위기의 유랑극단도 눈길을 끈다.

그윈플렌과 톰짐잭의 칼싸움은 합이 완벽하게 들어맞고, 유랑극단 여인들이 강에서 물방울을 튕기며 군무를 추는 장면은 꽤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압권은 그윈플렌이 데아를 안고 가는 마지막 장면으로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환상적이다.
음악은 수정되거나 새로 추가됐다.

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가든파티'와 상원의원들이 부른 '우린 상위 일프로'란 노래가 리프라이즈(이전 멜로디를 변주하거나 반복해 만든 노래)돼 새로 선보였다.

특히 규현(그윈플렌)이 부른 메인 넘버 '웃는 남자'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귓가에 맴돌았고, 최고의 디바 신영숙(조시아나)이 부르는 '아무 말도', '내 삶을 살아가'는 관객이 숨죽이고 전율케 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 박강경(44) 씨는 "초연 때도 봤는데 오늘 공연은 너무 재미있었다.

규현이 상상 이상으로 노래를 잘했고 영상이나 소품, 무대가 굉장히 발전했다는 것이 느껴져 좋았다.

이석훈 배우가 나오는 공연도 보고 싶다"고 밝혔다.

규현은 공연 후 무대인사에서 "초연 때 여러분과 같이 객석에서 (공연을) 봤는데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작품이 한국 창작품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대에 제가 이렇게 서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행복하고, '웃는 남자'를 통해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첫 무대 소감을 전했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 엄홍현 대표는 "조금씩 바꾼 디테일이 오늘 여러분에게 사랑받아 너무 행복했다.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매일 발전해서 마지막에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이렇게 빠른 시간에 다시 찾아뵐 수 있게 여러분이 도와주셨다.

매회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 들려드리도록, 또 좋은 무대 만들도록 배우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

로버트 요한슨 연출은 "그윈플렌은 가장 유명한 영화 캐릭터 중 하나인 '조커'의 영감이 된 캐릭터"라며 "순수하고 착한 그윈플렌, 여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데아, 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준 곰 같은 우르수스는 그 어떤 가족보다 감동적이다.

이들의 삶을 현실처럼 나타내 보여드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