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담 하얀코끼리 이사장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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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원 이끌고 미얀마서 보살행…"천 번 생각보다 실천이 중요"
"치우치지 않아야 바른 도리"…이주민·동포·북한 돕기에도 앞장 "나만 행복하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행복해야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자비가 아닙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고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죠"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하얀코끼리 이사장 영담 스님은 세계 최대 불교국가 미얀마에서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신으로 통한다.
행원(行願)의 상징인 보현보살은 대웅전에서는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위치하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영담 스님은 2005년 미얀마·태국 국경지대의 난민촌 교육 지원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눈을 돌렸고 2012년 사단법인 하얀코끼리를 설립했다.
"하얀코끼리는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잉태할 때 꿈에 나타났고,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물을 뿌려 몸을 씻어준 상서로운 동물입니다.
육상동물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면서도 함부로 힘자랑하지 않고 욕심부리지도 않습니다. 하얀색은 단체를 깨끗하게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뜻하고, 긴 코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의미하며, 커다란 귀는 연대와 소통의 상징이죠"
사업 대상국은 미얀마·태국·중국·인도·스리랑카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학교와 보육원 건립, 수력발전소 건설, 공부방과 해외 놀이터 조성, 정수기 설치, 의약품 지원 등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2013년부터 매년 1월 미얀마에 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올해도 20여 명의 봉사단원을 이끌고 10일 새벽 양곤공항에 도착해 딴린의 수투판학교, 바고의 빤찬콩보육원·쉐구지학교를 돌며 지원 물품과 성금을 전달하는 한편 문화교육과 위생교육, 환경 개선과 시설 보수 등 나눔과 봉사를 펼쳤다. 영담 스님이 미얀마와 시작된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3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이 발족했을 때 부천 석왕사 주지인 그가 초대 이사장을 맡고 석왕사에 사무실을 마련해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도왔다.
1998년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던 NLD(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가 부천에 설립된 인연으로 미얀마 돕기를 시작했다.
"수치 여사와 친분이 깊습니다.
연금 상태에 있을 때 집을 방문했고 그가 한국에 왔을 때도 만났죠. 이번에는 뵙지 못하고 2009년 5·18 광주인권상을 받은 민주화운동가 민꼬나잉 씨를 만났죠. 민꼬나잉 씨는 시상식에 참가하러 한국에 들렀을 때 석왕사에도 왔습니다.
해마다 봉사단과 함께 미얀마를 찾는 것은 이런 인연도 있지만 한국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고 미얀마에서 얻는 게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얀마는 식민지와 군부독재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해 동남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거리는 우리나라 1960∼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2015년 민주화되기 전에는 검열과 감시가 심해 봉사하러 오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영담 스님은 미얀마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게으르다는 점을 빼면 배울 게 많죠. 심성이 순박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압니다.
가난하게 살지만 1인당 기부금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미얀마인들이 스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습니다.
개인을 섬기라는 게 아니라 출가 공동체인 승가(僧伽)에 귀의(歸依)한다는 뜻인데 그런 정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나를 비롯한 불교 지도자들부터 반성해야죠"
미얀마 남자들은 10살을 전후해 1년간 절에서 승려로 지낸다.
'신쀼'라고 부르는 출가 의식이 치러지면 온 마을 사람이 나와 축하해준다.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도 있는데, 이를 거쳐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미얀마 스님들의 탁발 행렬은 외국인에게 인기 관광 상품이 됐다.
"조계종에서는 고교 졸업장이 있어야 출가 자격을 줍니다.
어느 정도 사회교육을 받아야 수행자 자격을 인정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불가(佛家)의 선득도(先得度) 후교육(後敎育) 전통을 폭넓게 수용해야죠. 또 승복 입고 구걸하는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미얀마처럼 단체로 탁발하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상징적으로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담 스님은 1966년 12살의 나이로 경북 금릉 청암사로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
2000년에는 어릴 때 어머니와 떨어져 절에서 지낸 경험을 담아 '동승일기'란 책도 펴냈다.
범어사 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거쳐 1982년부터 석왕사 주지를 맡고 있다.
부천신문 발행인,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총무부장, 불교방송 이사장, 불교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남학원(영남중·부산정보고)과 사회복지법인 석왕사룸비니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미얀마 봉사에는 영남학원 교직원과 학생, 석왕사룸비니와 관계 복지시설 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영담 스님은 1960∼1970년대 절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생활한 이력과 10여 년간의 미얀마 방문 경험을 앞세워 봉사단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어떨 때는 몸소 시범도 보인다.
10일 수투판학교에서는 미장 솜씨를 과시하는가 하면 11일 빤찬콩보육원에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즉석 사진을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용접이나 전기 수리 등 못 하는 것이 없다.
"올 때마다 나아져 다행입니다.
초창기에는 우리가 페인트칠까지 해주니까 우리만 믿고 시설물을 지저분하게 썼죠. 건물 구석마다 지린내가 진동했고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씹는 담배(꽁야) 때문에 잇몸과 이빨이 검붉게 물들어 있고 아무 데나 침을 뱉었죠. 이제는 스스로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애쓰고 있고 꽁야도 우리가 보는 데서는 안 씹더군요" 영담 스님은 이번 방문에서 걱정거리 하나를 더 떠안았다.
저지대에 자리 잡은 쉐구지학교는 장마가 시작되면 나뭇잎으로 지붕을 이은 교사(校舍)에 물이 차 공부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기에도 걱정 없는 현대식 건물을 인근에 새로 지어 제2학교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하얀코끼리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1학교를 짓는 데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가 들었는데 이번에는 30만 달러(약 3억5천만 원)나 필요하다고 한다.
사정은 넉넉지 않은 데 돈 쓸 곳은 많아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도와줄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귀국하는 대로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작정이다.
영담 스님의 관심과 손길은 국제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은 2001년 근로자종합복지관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석왕사는 이주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며 다문화 축제와 다문화 나눔 장터를 열고 있다.
스리랑카 출신 스님 3명은 석왕사에 머물며 한국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법명을 능타(能陀)라고 지어준 스리랑카 출신 상좌(제자)는 조계종 승적과 한국 국적도 취득한 뒤 현재 미국에서 포교하고 있다.
2010년부터 국제한국어교육재단(구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을 이끌며 재외동포용 교재 개발과 한국어 교사 연수를 주관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도 맡아 북한 돕기와 남북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국내 귀환 고려인(CIS 동포)에게 한국어도 가르칠 계획이다. 하얀코끼리 봉사단은 3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13일 새벽 중부 내륙의 고원 도시 혜호에 도착했다.
인레호수와 수상마을 등을 탐방한 뒤 14일 밤 양곤공항을 출발해 15일 새벽 귀국할 예정이다.
"봉사단원들은 남을 돕겠다고 왔다가 더 많이 얻어갑니다.
남과 나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남을 돕는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죠. 종교나 민족이나 국적이나 이념을 따져서도 안 됩니다. 중도(中道) 사상에 따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연합뉴스
"치우치지 않아야 바른 도리"…이주민·동포·북한 돕기에도 앞장 "나만 행복하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행복해야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자비가 아닙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고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죠"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하얀코끼리 이사장 영담 스님은 세계 최대 불교국가 미얀마에서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신으로 통한다.
행원(行願)의 상징인 보현보살은 대웅전에서는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위치하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영담 스님은 2005년 미얀마·태국 국경지대의 난민촌 교육 지원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눈을 돌렸고 2012년 사단법인 하얀코끼리를 설립했다.
"하얀코끼리는 마야부인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잉태할 때 꿈에 나타났고,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물을 뿌려 몸을 씻어준 상서로운 동물입니다.
육상동물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면서도 함부로 힘자랑하지 않고 욕심부리지도 않습니다. 하얀색은 단체를 깨끗하게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뜻하고, 긴 코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의미하며, 커다란 귀는 연대와 소통의 상징이죠"
사업 대상국은 미얀마·태국·중국·인도·스리랑카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학교와 보육원 건립, 수력발전소 건설, 공부방과 해외 놀이터 조성, 정수기 설치, 의약품 지원 등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2013년부터 매년 1월 미얀마에 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올해도 20여 명의 봉사단원을 이끌고 10일 새벽 양곤공항에 도착해 딴린의 수투판학교, 바고의 빤찬콩보육원·쉐구지학교를 돌며 지원 물품과 성금을 전달하는 한편 문화교육과 위생교육, 환경 개선과 시설 보수 등 나눔과 봉사를 펼쳤다. 영담 스님이 미얀마와 시작된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3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이 발족했을 때 부천 석왕사 주지인 그가 초대 이사장을 맡고 석왕사에 사무실을 마련해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도왔다.
1998년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던 NLD(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가 부천에 설립된 인연으로 미얀마 돕기를 시작했다.
"수치 여사와 친분이 깊습니다.
연금 상태에 있을 때 집을 방문했고 그가 한국에 왔을 때도 만났죠. 이번에는 뵙지 못하고 2009년 5·18 광주인권상을 받은 민주화운동가 민꼬나잉 씨를 만났죠. 민꼬나잉 씨는 시상식에 참가하러 한국에 들렀을 때 석왕사에도 왔습니다.
해마다 봉사단과 함께 미얀마를 찾는 것은 이런 인연도 있지만 한국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고 미얀마에서 얻는 게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얀마는 식민지와 군부독재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해 동남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거리는 우리나라 1960∼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2015년 민주화되기 전에는 검열과 감시가 심해 봉사하러 오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영담 스님은 미얀마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게으르다는 점을 빼면 배울 게 많죠. 심성이 순박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압니다.
가난하게 살지만 1인당 기부금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미얀마인들이 스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습니다.
개인을 섬기라는 게 아니라 출가 공동체인 승가(僧伽)에 귀의(歸依)한다는 뜻인데 그런 정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나를 비롯한 불교 지도자들부터 반성해야죠"
미얀마 남자들은 10살을 전후해 1년간 절에서 승려로 지낸다.
'신쀼'라고 부르는 출가 의식이 치러지면 온 마을 사람이 나와 축하해준다.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도 있는데, 이를 거쳐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미얀마 스님들의 탁발 행렬은 외국인에게 인기 관광 상품이 됐다.
"조계종에서는 고교 졸업장이 있어야 출가 자격을 줍니다.
어느 정도 사회교육을 받아야 수행자 자격을 인정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불가(佛家)의 선득도(先得度) 후교육(後敎育) 전통을 폭넓게 수용해야죠. 또 승복 입고 구걸하는 폐단을 막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미얀마처럼 단체로 탁발하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상징적으로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담 스님은 1966년 12살의 나이로 경북 금릉 청암사로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
2000년에는 어릴 때 어머니와 떨어져 절에서 지낸 경험을 담아 '동승일기'란 책도 펴냈다.
범어사 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거쳐 1982년부터 석왕사 주지를 맡고 있다.
부천신문 발행인,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총무부장, 불교방송 이사장, 불교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남학원(영남중·부산정보고)과 사회복지법인 석왕사룸비니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미얀마 봉사에는 영남학원 교직원과 학생, 석왕사룸비니와 관계 복지시설 활동가 등이 참여했다.
영담 스님은 1960∼1970년대 절집에서 자급자족하며 생활한 이력과 10여 년간의 미얀마 방문 경험을 앞세워 봉사단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고 어떨 때는 몸소 시범도 보인다.
10일 수투판학교에서는 미장 솜씨를 과시하는가 하면 11일 빤찬콩보육원에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즉석 사진을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용접이나 전기 수리 등 못 하는 것이 없다.
"올 때마다 나아져 다행입니다.
초창기에는 우리가 페인트칠까지 해주니까 우리만 믿고 시설물을 지저분하게 썼죠. 건물 구석마다 지린내가 진동했고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씹는 담배(꽁야) 때문에 잇몸과 이빨이 검붉게 물들어 있고 아무 데나 침을 뱉었죠. 이제는 스스로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애쓰고 있고 꽁야도 우리가 보는 데서는 안 씹더군요" 영담 스님은 이번 방문에서 걱정거리 하나를 더 떠안았다.
저지대에 자리 잡은 쉐구지학교는 장마가 시작되면 나뭇잎으로 지붕을 이은 교사(校舍)에 물이 차 공부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기에도 걱정 없는 현대식 건물을 인근에 새로 지어 제2학교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하얀코끼리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1학교를 짓는 데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가 들었는데 이번에는 30만 달러(약 3억5천만 원)나 필요하다고 한다.
사정은 넉넉지 않은 데 돈 쓸 곳은 많아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도와줄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귀국하는 대로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작정이다.
영담 스님의 관심과 손길은 국제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은 2001년 근로자종합복지관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석왕사는 이주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며 다문화 축제와 다문화 나눔 장터를 열고 있다.
스리랑카 출신 스님 3명은 석왕사에 머물며 한국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법명을 능타(能陀)라고 지어준 스리랑카 출신 상좌(제자)는 조계종 승적과 한국 국적도 취득한 뒤 현재 미국에서 포교하고 있다.
2010년부터 국제한국어교육재단(구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을 이끌며 재외동포용 교재 개발과 한국어 교사 연수를 주관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도 맡아 북한 돕기와 남북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국내 귀환 고려인(CIS 동포)에게 한국어도 가르칠 계획이다. 하얀코끼리 봉사단은 3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13일 새벽 중부 내륙의 고원 도시 혜호에 도착했다.
인레호수와 수상마을 등을 탐방한 뒤 14일 밤 양곤공항을 출발해 15일 새벽 귀국할 예정이다.
"봉사단원들은 남을 돕겠다고 왔다가 더 많이 얻어갑니다.
남과 나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남을 돕는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죠. 종교나 민족이나 국적이나 이념을 따져서도 안 됩니다. 중도(中道) 사상에 따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