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 모양 고려시대 묘지석, 91년만에 소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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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민수 묘지명'…美·日 박물관서도 새 유물 일제강점기인 1929년 '조선고적도보'에 실렸으나 그동안 소재를 몰랐던 고려시대 묘지명(墓誌銘·죽은 사람의 행적을 돌이나 도자기에 새긴 유물)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확인됐다. 강민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3일 "고려시대 벼루 형태 민수(閔脩) 묘지명이 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음을 조사를 통해 파악했다"고 밝혔다.
민수(1067∼1122) 묘지명은 조선고적도보에 이왕가박물관 소장으로 기재됐으나, 행방이 묘연하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중앙박물관에 돌로 만든 벼루를 뜻하는 '석제연'(石製硯)이라는 이름으로 보관됐다는 사실이 조선고적도보 수록 이후 91년 만에 드러났다. 이 유물은 가로 13㎝, 세로 17.4㎝, 두께 2.9㎝이다.
재질은 점판암으로 추정된다.
유물 기록에 따르면 개성 부근에서 출토됐고, 1908년 8월 24일 12원에 구매했다. 강 연구사는 중앙박물관 학술지 '미술자료'에 게재한 논문 '새롭게 확인된 고려 묘지명'에서 "기존 연구에서는 민수 묘지명을 벼루 모양 석판으로 봤으나,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풍자연(風字硯) 형태를 갖추고 있어 벼루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고적도보 사진에는 글자가 하얗게 도드라져 보이는데, 현재는 대부분 벗겨졌으나 일부 글자에 흰색 물질이 남았다"며 "글자를 파고 그 위에 석회나 호분(胡粉) 같은 물질을 덧바른 듯하다"고 분석했다.
민수는 '고려사'에 한 차례 언급되는 인물이다. 묘지명은 "공의 이름은 수이고, 나이는 56세였다.
(중략) 공이 평소 예부터 행해온 바는 뚜렷하여 볼 만함이 있으니 참으로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강직하여 굽히지 않는 선비였다.
아들은 둘인데, 맏이는 '언실'이고, 다음은 '언성'이다"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강 연구사는 "증조는 정2품, 조부는 종3품이었으나 부친은 종6품이었고 민수는 정5품에 머물렀다"며 "묘지명의 주인이 관료였음에도 따로 묘지명 석재를 마련하지 않고 벼루 밑에 간략히 새긴 이유도 쇠락한 가계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강 연구사는 논문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소속 프리어·새클러 미술관과 일본 교토대 총합박물관에도 존재를 몰랐던 고려 묘지명이 있다고 밝혔다.
프리어·새클러 미술관 유물은 김용식(金龍軾, 1129∼1197) 묘지명으로 24행에 약 15자씩 적었다.
김용식은 12세기 중·하급 관료로, 문신 최효저가 글을 지었다.
총합박물관 소장품인 '상당현군 곽씨 묘지명'은 3행에 9자씩 썼는데, 묘지명 주인이 관료계층 여성으로 판단된다.
장지는 '백학사(白鶴寺)가 있는 산의 북쪽 기슭'이다. 강 연구사는 "앞으로도 해외에서 새로운 고려 묘지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민수(1067∼1122) 묘지명은 조선고적도보에 이왕가박물관 소장으로 기재됐으나, 행방이 묘연하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중앙박물관에 돌로 만든 벼루를 뜻하는 '석제연'(石製硯)이라는 이름으로 보관됐다는 사실이 조선고적도보 수록 이후 91년 만에 드러났다. 이 유물은 가로 13㎝, 세로 17.4㎝, 두께 2.9㎝이다.
재질은 점판암으로 추정된다.
유물 기록에 따르면 개성 부근에서 출토됐고, 1908년 8월 24일 12원에 구매했다. 강 연구사는 중앙박물관 학술지 '미술자료'에 게재한 논문 '새롭게 확인된 고려 묘지명'에서 "기존 연구에서는 민수 묘지명을 벼루 모양 석판으로 봤으나, 위는 좁고 아래는 넓은 풍자연(風字硯) 형태를 갖추고 있어 벼루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고적도보 사진에는 글자가 하얗게 도드라져 보이는데, 현재는 대부분 벗겨졌으나 일부 글자에 흰색 물질이 남았다"며 "글자를 파고 그 위에 석회나 호분(胡粉) 같은 물질을 덧바른 듯하다"고 분석했다.
민수는 '고려사'에 한 차례 언급되는 인물이다. 묘지명은 "공의 이름은 수이고, 나이는 56세였다.
(중략) 공이 평소 예부터 행해온 바는 뚜렷하여 볼 만함이 있으니 참으로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강직하여 굽히지 않는 선비였다.
아들은 둘인데, 맏이는 '언실'이고, 다음은 '언성'이다"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강 연구사는 "증조는 정2품, 조부는 종3품이었으나 부친은 종6품이었고 민수는 정5품에 머물렀다"며 "묘지명의 주인이 관료였음에도 따로 묘지명 석재를 마련하지 않고 벼루 밑에 간략히 새긴 이유도 쇠락한 가계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강 연구사는 논문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소속 프리어·새클러 미술관과 일본 교토대 총합박물관에도 존재를 몰랐던 고려 묘지명이 있다고 밝혔다.
프리어·새클러 미술관 유물은 김용식(金龍軾, 1129∼1197) 묘지명으로 24행에 약 15자씩 적었다.
김용식은 12세기 중·하급 관료로, 문신 최효저가 글을 지었다.
총합박물관 소장품인 '상당현군 곽씨 묘지명'은 3행에 9자씩 썼는데, 묘지명 주인이 관료계층 여성으로 판단된다.
장지는 '백학사(白鶴寺)가 있는 산의 북쪽 기슭'이다. 강 연구사는 "앞으로도 해외에서 새로운 고려 묘지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