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박수근 '길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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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박수근 화백(1914~1965)은 6·25전쟁이 끝나자 흩어졌던 가족을 모아 서울 창신동 작은 툇마루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며 ‘길가에서’(1954)를 비롯해 ‘절구질하는 여인’(1954), ‘나무와 두 여인’(1962), ‘유동’(1963) 등 자신의 대표작들을 쏟아냈다.
1954년 완성한 ‘길가에서’는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향토색 짙은 색감과 또렷한 윤곽선, 특유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그렸다. 세상 근심걱정 모르는 갓난아기 동생은 처네에 폭 싸여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다. 단발머리 소녀는 누군가를, 아마도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아비나 어미를 기다리는 듯하다. 화면에 정지시킨 사람의 형상은 당대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속눈썹에 달린 눈물방울처럼 애처롭게 다가온다.그림에 담긴 소녀의 눈빛과 표정, 자태에서 당시의 고단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고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화강암처럼 스며 있다. 단순한 설정이지만 소녀에 의해 시대적 감성을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근 예술의 전형을 읽을 수 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성실한 작가로 살았던 박 화백은 이처럼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시대적 감성을 자극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