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시민, 고속도로 막고 반정부 시위…'정치공백' 항의

시위 90일째…아운 대통령 "30년간 잘못된 정책의 대가 치르고 있어"

레바논 시위대가 1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와 주변의 고속도로 여러 곳을 봉쇄하고 정치적 공백 상태를 끝낼 것을 정치권에 촉구했다고 레바논 매체 '데일리스타'와 AFP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시위대는 이날 고속도로에서 차량 운행을 차단하고 타이어에 불을 붙였다.

많은 시위 참가자가 군경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다쳤다고 데일리스타가 전했다.

시위에 참여한 쿠사이 조아비(21)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체 지배 계급을 물러나게 할 것이고 우리 행보는 그때까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세 자녀의 엄마인 라일라 유세프(47)는 AFP에 "우리는 더는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도로를 막았다"고 밝혔다.

이날 베이루트뿐 아니라 북부 트리폴리와 남동부 하스바이야 등 다른 도시들에서도 빠른 내각 구성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는 작년 10월 17일 왓츠앱 등 메신저 프로그램의 세금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뒤 90일째를 맞았다.
최근 몇 주간 시위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고속도로 봉쇄 등으로 다시 격화된 양상이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시위를 근본적으로 촉발한 경제 위기가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아운 대통령은 14일 TV로 방영된 연설에서 "레바논은 30년 동안 누적된 잘못된 경제·금융 정책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산업, 농업 등에서 생산하기보다 빌리는 경제에 의존했고 부패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새 정부 구성이 장애물들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레바논에서는 작년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시위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발표한 뒤, 차기 정부가 꾸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운 대통령은 작년 12월 19일 진통 끝에 전 교육부 장관 하산 디아브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사드 하리리가 속한 수니파 정파 '미래운동'이 새 내각 참여를 거부하는 등 정파간 이견 속에 디아브는 새 내각을 아직 구성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기술관료들로 구성된 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종파가 다양한 레바논은 독특한 권력 안배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각각 맡고 있다.

레바논은 국가부채, 실업률, 자국통화 가치의 하락 등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국가부채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0%나 될 정도로 심각하고 청년층 실업률은 30%가 넘는다.

AFP는 레바논에서 지난 몇 달 간 시위가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늘고 많은 사람의 월급이 줄었다고 전했다.

지중해 연안 국가 레바논은 면적이 한국의 경기도와 비슷할 정도로 작고 중동에서 지하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겪으면서 국토가 많이 황폐해졌었고 2006년에는 이스라엘과 약 한 달 동안 전쟁을 치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