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중동평화 함께 노력"에도…호르무즈 파병엔 '온도차'

폼페이오 '파병 압박'에 강경화 "국민안전 중요"…美주도 군사행동에 함께 힘들듯
청해부대 작전범위 넓히는 방식으로 독자행동 가능성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에 참여해달라고 사실상 파병을 요청하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강경화 장관은 "기여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면서도 국민 안전과 이란과의 관계 등을 고려 요소로 언급, 미국 주도의 군사 행동에 함께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미 외교장관은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팰로앨토에서 열린 회담에서 최근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 정세를 논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장관은 최근 중동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같이했고, 이 지역 내 평화·안정이 조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을 같이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한미간에 다소 온도 차도 감지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해지면 유가 상승 등으로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며 '모든 국가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이나 중동 정세 안정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구체적으로 파병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말도 아니지만, 강경화 장관과의 회담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한미 외교장관이 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논의한 것은 처음으로, 미국의 '파병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 루트로, 사실상 이란군이 통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유조선에 대한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그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며 민간선박 보호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동참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요청한 상태다.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해달라는 것으로, 사실상 파병 요청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최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중동 정세를 언급하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강경화 장관은 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파병 여부에 대해선 일단 유보하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도 원유 수입량의 7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안정을 위한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이 지역의 국민과 기업의 안전, 이런 것을 생각하고 이란과의 관계 등도 다 고려해 (어떻게 기여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신년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와 관련해 밝힌 내용과 동일하다.

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기업과 교민의 안전 문제"라며 "원유 수급이나 에너지 수송문제도 우리 관심 가져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도 연결돼 있으며 이란과 외교관계도 있다.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현실적 방안을 찾아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한미 외교장관회담 논의 내용 등을 고려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 안정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현재로선 미국이 주도하는 IMSC에 참여하기보다는 독자적으로 한국 상선 보호에 나설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IMSC에 참여하면 이란과의 마찰이 불가피하고 중동에 있는 한국인까지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가 작전 범위를 인근 호르무즈 해협까지 넓히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방안은 파병을 위한 국회 동의를 따로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