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빨간바지 입고 '올림픽 金메달+메이저 첫승' 두 토끼 잡겠다"

도전! 2020 - '올림픽 퀸' 출사표 던진 김세영

금메달 목에 건 인비 언니 지켜보고 큰 감동
초반부터 피치 올려 올림픽行 티켓 거머쥘 것
친할아버지는 광주고교 시절 알아주던 럭비 선수였다. 이모할머니는 배구, 이모할아버지는 복싱 선수였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친오빠도 스포츠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익힌 끝에 공인 3단을 자랑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김세영(27) 얘기다.

다양한 스포츠인을 배출한 김씨 가문에서 김세영은 2016년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가족 중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여자 골프 부문)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4년 전엔 공동 25위에 그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올해엔 다시 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김세영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박인비 언니가 금메달을 목에 걸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며 “이번엔 직접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다.
김세영이 지난해 말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2020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김세영은 틈나는 대로 노래와 춤, 셀카찍기를 즐긴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직접 스마트폰을 들고 셀카를 찍어 보냈다.
‘올림픽 금메달+메이저 첫승’ 정조준

김세영은 2019시즌 LPGA투어의 대미를 장식했다. 11월 시즌 최종전으로 치러진 CME투어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여자골프 사상 가장 많은 우승 상금인 150만달러(약 17억4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8m 거리의 버디를 홀컵에 떨구며 단숨에 상금 랭킹 2위로 뛰어올랐다. ‘화끈함’으로 잘 알려진 그는 우승 직후 캐디에게 상금의 10%인 1억7400만원을 수표로 끊어줬다.이 상승세를 올림픽 금메달과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로 연결시키겠다는 게 그의 새해 다짐이다. 도쿄올림픽 출전권은 오는 6월 세계 랭킹 기준으로 국가별 상위 2명이 얻을 수 있다. 15위 안에 같은 국가 선수가 3명 이상 있는 나라는 최대 4명을 출전시킬 수 있다. 이달 13일 기준 세계 랭킹 5위인 그는 “한국 선수는 골프 대회 우승보다 올림픽 출전하는 게 더 어렵다”며 “시즌 초반부터 피치를 올려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세영은 지난 시즌 CME투어챔피언십을 포함해 3승을 올리면서 LPGA투어 개인 통산 10승을 달성했다. 프로 데뷔 10년째를 맞아 박세리(43), 박인비(32), 신지애(32)에 이어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로는 네 번째로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메이저 대회 우승과는 연이 닿지 않고 있다. 김세영은 “올해엔 아쉬움을 꼭 털어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골프는 끝없는 도전, 그리고 자신감”김세영은 ‘빨간 바지의 마법사’로 유명하다. 대회 최종일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극적인 역전승을 자주 올린 덕분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4·미국)가 최종일 빨간 옷을 입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데서 영감을 받았다. 빨간 바지를 입고 일곱 차례 연장전을 치른 가운데 핀 위치를 잘못 알고 샷을 했던 때만 한 차례 졌을 뿐,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빨간 바지는 좋은 부적 같은 것”이라는 그는 “갖고 있는 빨간 바지만 100벌이 넘는다”고 말했다.

연장전에서 유독 강한 멘탈 비결에 대해서는 “연장전에서는 ‘1등 아니면 2등’이라고 생각하게 돼 맘이 편해진다”고 털어놨다. “상대 선수도 긴장할 게 뻔하기 때문에 나만 특별히 더 긴장되고 하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세영의 아버지 김정일 씨가 그의 강철 멘탈을 처음 알아챈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아마추어챔피언십 연장전에서 티샷 순서를 정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선수와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그 선수가 떠는 걸 보더니 속으로 ‘너 죽었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골프를 시키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때부터 세영이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TV 중계를 통해 보여지는 김세영은 항상 잘 웃는 밝은 성격이다. 그런 그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정체된 느낌이 들 때는 ‘딴생각’을 품은 적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손에서 골프채를 놓지 않는 건 ‘골프=끝없는 도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세영은 “골프는 끝이 없어 아무리 많은 타이틀을 이루더라도 초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몇 살’이 아니라 ‘우승하지 못할 실력’이 됐다고 느낄 때 골프채를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영은 19일(한국시간) 끝난 LPGA투어 2020시즌 개막전 다이아몬드리조트 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 3라운드를 단독 2위(11언더파)로 마쳤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