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막말' 이선권 北 외교 수장에…비핵화 협상 살얼음판 걷나

북한 전문매체 美 NK뉴스 보도

"北, 4년여간 외교전략 총괄한
미국통 이용호 외무상 전격 교체"

軍출신에 외교 경험 없는 이선권
김정은 '강경 노선' 선택 전망
"美·北 협상 장기화 가능성 커"
북한의 외교 전략을 총괄하던 이용호 외무상이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으로는 ‘냉면 목구멍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사진)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협상파’이자 ‘미국통’인 외교라인을 경질하고 군부 출신 ‘강경파’를 외교 수장에 기용한 셈이다.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로 나가겠다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미협상 투톱 모두 교체19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와 복수의 대북소식통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주에 이런 내용을 북한 주재 외국 대사관에 통보했다. 이용호는 30년 넘게 외교관 경력을 쌓으며 영국 주재 대사, 외무성 부상 등을 지낸 북한의 외교통이다. 2016년부터 4년여간 외무상 자리에 있으면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함께 대미전략을 총괄해왔다.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필두로 통일전선부가 쥐고 있던 대미(對美) 외교 주도권을 되찾아 ‘뒷수습’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교체설이 불거졌다. 지난달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촬영한 단체 기념사진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용호의 ‘대부’ 격인 이수용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도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고 후임에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가 임명된 것도 이용호의 경질과 같은 맥락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항일빨치산 1세’ 황순희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른다며 발표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서도 이수용은 제외됐다. 명단에는 모두 12명의 당 부위원장 중에서 이수용을 포함해 박광호, 김평해, 태종수, 안정수 5명의 이름이 빠져 거의 절반이 교체됐음을 시사했다.
< 김정은 ‘항일빨치산 1세’ 황순희 빈소 조문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와 함께 지난 17일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의 장례식에 조문했다고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황순희는 김일성 주석과 항일 투쟁을 함께한 ‘여성 빨치산 혈통’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연합뉴스
이선권 기용…대미 강경노선 예고

신임 외무상을 꿰찬 이선권은 군 출신이다. 김영철과 함께 통일전선부를 이끌며 ‘대남(對南) 투톱’으로 불리며 남북관계와 관련된 전략에 관여해왔다. 남북군사실무회담 대표를 맡기도 했고,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평통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핀잔을 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통전부 부부장직에서 해임되고,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신변이상설’이 돌았지만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으로 건재가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선권의 외무상 기용은 북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공식 확인될 수밖에 없지만 충격적인 인사라고 보고 있다. 외교적 경험이 전무한 ‘강경파’를 투입한 것 자체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강경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관측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외무상에 군부 출신 이선권을 선임한 건 이례적”이라며 “올해 이어질 미·북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재외공관장 소집…대미전략 논의

북한은 재외공관장들을 한데 모아 대외전략 재정비에 나섰다. 18일(현지시간) 지재룡 중국 주재 북한 대사와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 등 주요 해외 공관장들이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향하는 모습이 잇따라 포착됐다.

평양에서 열리는 공관장 회의에선 대미 전략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에 맞서 북한의 재외 공관을 통한 외화 조달 증액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신임 외무상 인사도 공식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8년 7월과 2019년 3월에도 유엔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공관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외교 정책 등을 논의했다. 모두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였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