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각규가 말하는 故신격호…"'절대 포기 말라'던 도전의 역사"

▽ 황각규 롯데 부회장이 기억하는 故 신격호 명예회장
▽ 경제성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 '초점'
▽ 생전 "포기하지 마라", "직접 가봐라" 등 강조
▽ "신동주 신동빈 형제 교감하지 않겠냐"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이미경 기자)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직원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집행하며 '도전의 역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은 20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롯데그룹이 1977~1978년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와 호텔을 세우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준하는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신격호, 韓 유통산업에 선구적 투자

황 부회장은 롯데그룹이 1970년대까지 25년간 벌어들인 자기자본은 170억엔(약 1778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한국에 400억엔을 투자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1975년 부지를 사들인 후 롯데쇼핑센터와 호텔을 건설하면서 상당한 투자를 했다"며 "1978년 기록에 따르면 당시 외국인의 직접 투자 중 70%가 롯데그룹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투자금이었다"고 설명했다.이어 황 부회장은 "모아놓은 돈의 2.5배를 한국에 투자한 셈으로, 상당한 도전의 역사라고 본다"며 "일본에 투자한 것보다 모국에 투자한 게 훨씬 자본수익률이 좋다고 판단했겠지만, 한국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잠실 롯데월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생전 신 명예회장은 캐나다 헤드먼트 인도어 테마파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황 부회장은 "인구 60만의 도시에 생긴 테마파크를 보고 우리나라도 가족들이 쇼핑하고 즐기는 걸 만들면 되겠다고 판단했다"며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 명예회장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부분에 대해 장래성이 있다고 봤다"고 분석했다. 베트남 하노이 롯데센터와 소공동 롯데호텔에도 전망대가 있었던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신 명예회장은 항상 높은 빌딩을 지으면 전망대는 꼭 필수로 뒀다"며 "돈은 못 벌지만 고객들이 롯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져 장기적으로 롯데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좋다고 생각했고, 소비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많은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롯데월드타워도 대한민국 랜드마크가 중요하다는 신 명예회장의 생각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황 부회장은 "롯데월드타워도 당시 타워팰리스가 잘 되던 때여서 빌딩 높이를 60층으로 해서 아파트로 하자는 내부 의견이 나왔지만, 신 명예회장이 거절했다"며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랜드마크를 역작으로 남기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롯데월드타워는 한국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지금은 다 알게 되고, 알게 모르게 롯데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신 명예회장은 생전 '도전과 열정'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열정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40년 전에 많이 했었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 화장품에서 출발해 껌·초콜릿 사업까지…제철·정유사업에도 '의욕'롯데그룹을 재계 5위까지 키운 신 명예회장은 1946년 화장품으로 첫 사업을 전개했다. 황 부회장은 "화장품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다음 츄잉껌 사업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신용을 지켜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했다"며 "초콜릿 사업을 벌이면서 모든 은행들이 반대했지만, 일본 모 종합상사가 많이 도와준 뒤 이 회사와는 아직까지도 거래하면서 신용을 쌓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 명예회장은 제철과 정유사업에도 의욕을 보였다고 전했다. 신 명예회장에 대해 황 부회장은 "본인 말에 따르면 화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투자하고 싶었던 게 정유사업이어서 정부에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롯데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며 "1960년대 일본 롯데 안에 제철사업도 하려고 태스크포스(TF)팀 50명도 꾸렸지만, 아쉽게도 국가주도로 한다고 해서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TF팀이 만든 사업보고서를 정부에 그대로 전달했다.

황 부회장은 "아무래도 이 사업계획서가 포항제철에 그대로 적용된 듯 하다"며 "박태준 회장과 신 명예회장은 옛날에 친하게 지내면서 교감이 있었고, 박태준 회장에게 사업계획서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추측했다.

신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직원들에겐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 부회장은 "제가 2002년 인도과자 회사와 어려운 협상을 거치고 있던 과정에선 "인도 시장이 장래성이 있으니 직접 가보라"고 했다"며 "사업을 하다보면 머뭇거릴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절대 포기하지마라'며 잘 안 된 사업에 대해선 본인이 다 책임을 졌다"고 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2015년 7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황 부회장은 "(두 형제가) 옆에 나란히 앉아있으니 교감하시지 않겠나 싶다"며 "유언을 남겼는 지 여부는 아직 가족 내에서 확인을 안 해서 확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조문 했는 지에 대해선 롯데그룹은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 신 명예회장의 발인은 22일 오전 6시에 진행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영결식은 간단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울산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설 연휴 전전날인 만큼 도로사정을 예측하기 불가피하다"며 "서울에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고 밝혔다.

고은빛/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