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설비 투자는 '외면'…해외 주식·부동산으로 간다

풍부한 시중자금 어디로?

해외 직접투자 매년 증가세
지난달 개인 달러예금 '최대'
갈 길 잃은 시중 자금이 국내 경기 둔화와 맞물려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기업들은 저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국내 생산설비 확충보다 해외 기업 인수 및 투자에 더 쏟아붓고, 개인과 금융회사들은 해외 주식·부동산 투자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직접 투자는 2015년을 바닥으로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해외 직접 투자는 국내 기업과 개인 등이 해외 기업 경영권 인수 및 법인 설립, 부동산 투자 등에 투입한 자금을 의미한다. 2015년 236억달러였던 해외 직접 투자는 이듬해 299억달러로 늘었고 2018년에는 382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작년에도 11월까지 300억달러를 넘어섰다.한 투자사 임원은 “2016년은 역대 최저 기준 금리와 재정지출 확대 등의 영향으로 부동자금이 처음으로 900조원을 돌파했던 시점”이라며 “시중 자금이 늘어나면서 기업과 개인이 해외 유망 투자처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업·부동산 투자 확대는 최근 국내 설비·건설 투자가 주춤해진 것과 대비된다. 한은에 따르면 2017년 5627억원이던 총고정자본형성(설비·건설투자)은 2018년 5490억원으로 줄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작년 1~3분기 실적이 3869억원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2019년 연간 수치는 2018년보다도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3~4년 전부터 이자율이 가파르게 떨어졌지만 국내 기업들의 설비 투자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며 “노동비용 상승,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라인을 옮긴 영향”이라고 설명했다.개인과 금융회사들의 해외 주식 투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전년 대비 증가했다. 다만 해외 채권 투자는 지난해 미국의 채권 가격이 급등하자 차익 실현에 나선 영향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다.

개인들의 달러 투자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은 794억달러로 월별 기준으로는 2018년 3월 이후 1년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개인들의 달러 예금은 역대 최대 규모인 154억달러에 달했다. 지난달 초 달러당 119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월말 1150원대까지 급락(달러 가치 하락)했지만 개인들은 오히려 저가매수 차원에서 달러 투자를 더 늘렸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