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못내려가요” 취업난 속 사라지는 대학가 귀향버스...노량진 학원가로 몰리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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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왁자지껄설, 추석 등 명절마다 운영되던 대학가의 ‘귀향버스’가 사라지고 있다. 장기화된 취업난에 귀향을 포기한 대학생이 늘면서 버스 운행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설 귀향버스는 추석 때보다는 수요가 적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어 대학마다 오랜 기간 운영해온 복지사업 중 하나다. 귀향을 포기한 청년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고시원과 학원가로 몰리고 있다.
건국대 올해 설 귀향버스 운영중단, 성대도 축소운영
코 앞 다가온 공무원 시험에 설 특강 들으려 "귀향포기"
◆사라지는 대학가 ‘귀향버스’
건국대 학생복지위원회는 올해 설 명절 귀향버스를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용객이 크게 줄어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2018년만 해도 건국대는 대전-부산, 청주-울산, 전주-광주, 대구-포항, 진주-창원 5개 노선을 운영했다. 작년 2개 노선으로 통폐합했다가 올해는 아예 운영을 중단했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는 올해 설 귀향버스를 수원-대구-부산-마산 1개 노선으로 줄였다. 그동안 외부업체와 학교 직영버스를 2개 노선으로 나눠 운영했지만, 올해는 이용인원이 줄면서 직영버스로만 운영하게 됐다. 성균관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올해는 귀향버스 신청자가 40명 정도에 불과했다”며 “외부업체와 최소 수송인원 계약조건을 채우지 못해 노선을 통합했다”고 밝혔다.
경희대는 ‘적자운영’을 하기로 했다. 작년 경희대 생활협동조합은 신청자가 적다는 이유로 설 귀향버스를 취소했다. 3개 노선의 신청인원을 합한 수가 계약조건인 15명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인원이 적어 손해를 보더라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학생들이 귀향버스를 찾지 않게 된 주된 이유는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었기 때문이다. 공개채용이나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어 고향에 내려갈 시간이 없고, 고향에서 ‘눈치밥’도 피하고 싶다는 게 학생들 얘기다.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 15일 내놓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 1986명 중 ‘설 연휴에도 출근한다’는 질문에 51.5%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설 연휴에 출근하는 이유로는 ‘연휴에도 회사, 매장은 정상 영업을 하는 탓(73.1%)’이 가장 컸다. 반면 ‘쉬고 노느니 일하려고(15.8%)’, ‘명절에 집에 있는 게 더 피곤해서(5.4%)’, ‘귀향이나 친척 모임을 피할 핑계가 필요해서(5.0%)’ 등의 자발적으로 설 근무에 나섰다는 응답도 일부 있었다.
◆설 연휴에도 노량진 학원가는 ‘후끈’
귀향을 포기한 청년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스터디룸과 열람실, 학원가로 몰리고 있다. 상반기 공채는 물론, 공인회계사 시험과 공무원 시험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박예원 씨는 설 특강을 듣기 위해 귀향을 포기했다. 이 씨는 “시험은 3월에 있지만 온전히 집중하려면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사치”라고 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앞둔 대학생 이 모씨(25)도 “공인회계사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명절을 챙길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학원들은 이 씨와 같은 수험생들을 겨냥해 각종 특강을 내놨다. 교육업체 에스티유니타스는 공무원 시험준비생을 위한 현장특강을 마련했다. 24~27일 설 연휴 내내 이어지는 일정임에도 3000~4000명 가량이 신청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영어교육업체 파고다어학원도 설 연휴 기간 토익(TOEIC) 실전문제 풀이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가 인근 스터디카페들도 대부분 연휴기간 문을 연다. 대학 열람실이 문을 닫으면서 갈 곳이 없어진 학생들을 받기 위해서다. 연세대 인근의 A 독서실은 “명절에는 하루나 이틀 단위로 독서실을 빌리겠다는 문의가 늘었다”며 “이번 연휴도 평소보다 일일권을 발급하겠다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취업·학업에 지친 학생들을 위한 ‘명절 대피소’도 운영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은 설 연휴기간 강남, 종로, 신촌 등 5개 지점에서 자율학습 공간과 간식을 제공하는 파고다 명절대피소를 운영한다. 2015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올해로 5년째다. 학원 관계자는 “상반기 공채, 공무원 시험 등을 앞두고 취준생들 많이 찾는다”며 “추석과 설을 포함해 매년 10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