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떠났지만…헤지펀드 위한 '멍석'은 그대로?

사진=연합뉴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그룹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입해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주식을 매입하고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 20개월 만이다. ‘엘리엇’이란 불확실성이 해소됨에 따라 현대차의 미래 사업과 지배구조 개편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엘리엇은 떠났지만 ‘제2의 엘리엇’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은 그대로라는 분석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표(票)퓰리즘’을 위해 기업 대주주 권한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아서다. 상법 개정안은 엘리엇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상법 개정안 요지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대부분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엘리엇은 그동안 현대차그룹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을 요구해왔다.

이미 기업을 옥죄는 시행령 개정안은 일방통행식으로 처리된 상태다. 정부는 최근 기업 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고 국민연금이 임원의 해임을 청구해도 이를 경영간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상법·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기업들이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관계부처 사이에서 “시행령 적용이 1년 유예될 수 있다”는 기류가 감지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올초 기자회견에서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곧 마련할 것”이라고 말하며 없던 일이 됐다 기업들 사이에선 정부가 되레 투기자본에 ‘멍석’을 깔아주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을 옥죄는 법과 시행령 개정이 계속 이뤄지면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의 틈을 파고드는 헤지펀드의 공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