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미안한 명절'…연휴에 농성 천막 지키는 사람들

"명절인데 우리도 집에 가고 싶죠. 조카들에게 용돈도 주고 가족들과 떡국도 먹고 싶은데 마음이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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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둔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소공원 인근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 송모(54)씨는 올해 설을 농성 천막에서 보내야 하는 심경을 연합뉴스 기자에게 털어놨다. 요금 수납원으로 일하던 송씨는 지난해 7월 일자리를 잃자 거리로 나서서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 등을 촉구하며 몇 달째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송씨는 "가족들은 '당장 집에 와라', '얼마나 직장을 더 다니려고 그러냐'며 농성을 멈추라고 하지만 계속할 수밖에 없다"면서 "얼마 전 태어난 조카 손주도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라며 씁쓸해했다.

송씨와 함께 톨게이트 노동자 천막을 지키고 있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20여명이 천막을 지키며 남는다"며 "다 같이 모여 차례상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 가족이 모여 떡국 한 그릇을 나눠 먹는 설 연휴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가족에게 미안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은 또 있다.

고(故)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가 인근에 세워둔 농성 천막과 시민 분향소 역시 평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씨를 추모하는 촛불 문화제와 발원 기도는 설 연휴 전날까지도 그대로 진행됐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도 천막 농성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된 공무원의 원직 복직 등을 요구하며 500일 넘게 농성 중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천막은 근무 당번이 교대로 돌아가며 지킬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올해 설에는 천막을 지키는 당번이 아니라서 내려갈 수 있다. 나는 다행히 내려갈 수 있지만, 동료들이 명절에 가족끼리 보내지 못한 채 천막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참 서글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집에 내려갈 때마다 언제 복직되냐고 자꾸 물어보시니 한편으로는 안 가고 싶기도 하다"며 "다들 위로하려고 말을 건네지만 또 물어보면 아프다"며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내란음모·내란 선동 혐의로 2013년 구속된 후 유죄판결을 받아 복역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누나 이경진(68) 씨는 "내게 몇 년 전까지는 명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며 설 연휴에도 천막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이씨는 "내란이 없으면 선동도 없는 건데 2013년 8월 13일 수감된 이후 7년이나 아무런 말도 없는 건 잘못됐다"며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었는데 변화가 없다"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은 설 당일인 25일 광화문 세종로소공원, 서울역,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고공 농성장이 있는 강남역 등을 돌며 설날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꿀잠 관계자는 "해가 바뀌었지만 농성장은 줄지 않은 채 더 많은 노동자가 거리에서 또 명절을 보내고 있다"며 "올해 추석은 거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 없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