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유대인이 있다'…伊홀로코스트 생존자 집에 혐오 낙서

반유대주의자 소행 추정…이탈리아 정치권 "광기에 맞서야" 비판
27일 국제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 추모일을 앞두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이 사는 집에 반유대주의 낙서가 휘갈겨져 분노를 촉발했다. ANSA 통신에 따르면 24일 오전(현지시간) 북부 토리노 인근 몬도비 지역에 있는 유대인 가옥 현관문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Juden hier'라는 글자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낙서가 발견됐다.

독일어 'Juden hier'는 '여기 유대인이 있다'라는 뜻이다.

해당 가옥은 이탈리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홀로코스트 생존자 리디아 롤피가 생전 거주했던 곳이다. 리디아 롤피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독일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해방 후 독일 나치의 만행과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는 책을 다수 펴내는 등 유대인 인권 운동가로 목소리를 내왔다.

1996년 그가 사망한 뒤 해당 가옥엔 그의 아들이 들어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건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고조되는 반유대주의 물결에 대응하고자 의회가 처음으로 임명한 밀레나 산테리니 국가 반유대주의 조정관은 "우리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점에 터진 이번 일은 편협함과 도발성을 드러내는 매우 심각한 징후"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한 축인 중도좌파 정당 민주당의 니콜라 진가레티 대표도 "우리가 사는 이곳은 증오의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며 "우리 모두 분연히 일어나 이러한 광기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반유대주의 사건이 부쩍 증가해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한 민간단체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작년 한 해 발생한 반유대주의 관련 사건은 251건으로 전년(181건) 대비 38.6% 증가했다.

작년 9월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종신 상원의원인 릴리아나 세그레가 극우주의자들에게 지속적인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세그레는 현재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