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챔피언 제조기!'…김학범의 쉼표 없는 우승 행진(종합)

선수에 대한 강한 믿음과 팔색조 전술이 빚어낸 값진 우승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로테이션 실패…이번에는 '완벽 성공'
이쯤 되면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의 대회 2연패를 이끌었던 김학범(60) U-23 축구 대표팀 감독이 이번에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역대 첫 우승을 일궈내면서 '우승 청부사'로 우뚝 섰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6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회 결승에서 연장 후반 8분 터진 정태욱(대구)의 결승 골로 1-0으로 이기고 역대 첫 전승 우승(조별리그 3경기·8강·4강·결승)의 신화를 썼다.

이로써 김학범 감독은 2018년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1년 4개월 만에 또다시 U-23 대표팀을 이끌고 챔피언 트로피를 따내는 기쁨을 만끽하며 '우승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국내에서 손꼽는 지략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이름을 따서 '학범슨'이라는 애칭을 가진 김 감독은 U-23 대표팀을 이끌면서 두 차례 굵직한 국제대회 우승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의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대업까지 완수하며 정상급 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

AFC U-23 챔피언십 우승 과정도 빛났다.

김 감독은 상대 팀의 전략에 맞춘 철저한 로테이션으로 이번 대회 첫 전승 우승(6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정해진 '베스트 11' 없이 23명의 선수 가운데 누가 출전해도 새롭게 '베스트 11'이 꾸려지는 게 김학범호의 힘이었다.

김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조별리그에서 만날 세 팀의 전력을 완벽하게 분석한 맞춤 전술을 마련해 선수들과 '반복 훈련'을 펼쳤다.

상대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선발 라인업'도 이미 완벽하게 마련됐다. 특히 로테이션을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평가하는 '생존 경쟁'도 이어졌다.
김 감독은 조별리그 중국과 1차전을 마친 뒤 이란과 2차전에는 1차전 선발 명단에서 무려 7명을 바꿨다.

우즈베키스탄과 3차전에서는 6명의 선발 라인업을 교체하더니 요르단과 8강전에서는 8명이나 변화를 줬다.

호주와 준결승에서 5명을 바꾸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전에서는 왼쪽 풀백 김진야(서울)를 오른쪽 날개로 투입하는 변칙 전술을 가동하는 등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상대가 예상할 수 없는 '팔색조 전술'로 기어이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김 감독의 '로테이션 전술'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아픈 과거가 있어서다.

김 감독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로테이션 전술'을 가동하다 큰 낭패를 봤다.

한국은 2018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바레인을 6-0으로 물리치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김 감독은 '약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1차전 선발 멤버 가운데 6명을 바꾸는 모험을 단행했지만 1-2로 패하는 창피를 당했다.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전이 끝나고 나서 참담한 표정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로테이션을 너무 일찍 사용한 것 같다.

나의 판단 착오였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말레이시아전 패배 때문에 조 1위 기회를 날린 한국은 2위로 16강에 올라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 우승 후보들과 차례로 만나는 '가시밭길'을 자초했다.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아시안게임 경험은 김 감독에게도 큰 교훈으로 남았다.
'공부하는 지도자' 답게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 감독은 이번 대회를 맞아 완벽해진 '로테이션 전술'을 준비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올림픽 조별리그가 시작되는 7월 23일까지 6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김 감독의 과제는 이번 대회에 나선 23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옥석 가리기'를 통해 본선 무대에 나설 18명(와일드카드 3명 포함)의 선수를 뽑는 것이다.

여기에 대표팀 전력에 힘을 불어넣을 3명의 와일드카드의 윤곽도 잡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김학범 감독은 도쿄올림픽에서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홍명보호가 따낸 '동메달' 이상의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김 감독은 "아시안게임 경험이 큰 도움을 줬다.

두 팀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던 게 잘 맞아떨어졌다"라며 "이것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었고, 두 팀을 만드는 데 주력한 이유다. 선수들이 그 믿음에 보답해줬고 잘해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