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 "라이벌은 나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작년 하반기 3승 여세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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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2020 - 올해 '대세' 예약 임희정임희정(20)에게 2019년은 ‘롤러코스터’를 탄 시간이었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했다. 하지만 ‘라이벌’ 조아연(20)이 개막전에서 정상에 서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 사이 그는 커트 통과가 급급한 신세가 됐다. 부진이 길어질 때쯤 우승이 터져나왔다. 메이저대회 1승을 포함해 3승. 그가 받은 최종 성적표다. 신인왕은 라이벌에게 내줬으나 상금(4위)에선 조아연(5위)을 앞섰다. 요새 웃을 일이 많아졌다는 임희정을 경기 안성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다. 임희정은 “올초만 해도 너무 안 웃어 ‘로봇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니들이 요즘엔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며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 외모로 '사막여우' 별명
KLPGA 새 스타로 자리매김
비용 아끼려 스크린골프로 연습
눈물 젖은 빵 맛 일찍 알아버려
2000년생인 임희정은 풍족함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밀레니얼 세대’다. 하지만 또래처럼 지난 시즌 초반 자신의 부진을 웃어넘길 여유가 없었다. “독하게 공을 쳤다”는 그는 “헝그리 정신을 알 것 같다”고도 했다.‘닮고 싶은 스윙 1위’로 동료들이 꼽기도 한 그의 스윙은 독학으로 완성됐다. 스윙을 영상으로 찍어 수만 번 돌려본 결과물이다. “‘스윙 교과서’로 불리는 김효주 언니의 스윙을 따라 하려 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식 레슨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향 강원도 태백 인근에서 한 번씩 열리는 ‘지역 유망주 원포인트 레슨’이 유일한 기회였다. 골프대회가 없으면 레슨도 없었다. 그는 “1년에 한 번뿐인 기회였기 때문에 궁금했던 걸 적어놨다가 몰아서 물어봤다”며 “골프로 성공하고 싶다는 의지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연습라운드 비용이 모자라 스크린골프로 코스를 익히고 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다. 임희정은 “엄마가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잠도 몇 시간 못 주무신 채 바리바리 내 짐을 싸 대회장에 따라오셨다”며 “그때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짠한’ 감정보단 ‘무조건 골프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성공에 대한 압박과 조급함을 그는 더 강렬한 절박함으로 이겨냈다. 그는 반 시즌 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임희정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골프밖에 몰랐지만 요즘은 친구들과 다니며 옷도 사고, 노래방도 갈 줄 알게 됐어요. 하하. ‘길거리 음식’도 마음껏 사먹고요.”임희정은 자신의 성공의 공을 ‘밀레니얼 동기’에게 돌렸다. “우리 ‘공공(00)년생’은 정말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 시절에도 경쟁했는데 투어까지 이어졌잖아요. 특히 저를 포함한 루키 3인방인 (조)아연이와 (박)현경이에게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런 훌륭한 경쟁자가 있던 덕분에 지금의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임희정의 새해 목표는 ‘숨 고르기’다. 지난 시즌 첫 승에 대한 조급함에 발목이 잡혔던 것을 교훈 삼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제 롤모델이 신지애 선배입니다. 신지애 선배 아버님이 출판한 선배의 자서전을 몇 번이나 읽었고 힘을 얻었어요. 선배님은 저보다 힘든 상황을 이겨냈고 어디서나 정말 꾸준히 잘하시잖아요. 신지애 선배처럼 새해 목표는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중계방송에 자주 잡혀 팬들이 저를 자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좀 더 자주 웃을 거예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 ‘사막여우’도 웃을 때 제 눈이 살짝 찢어져야 닮아 보이니까요. 하하.”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