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정부가 권장할 땐 언제고…지주회사만 막은 삼각합병

현장에서

상법 개정, 기업 삼각합병 허용
CJ의 지배구조 단순화 시도엔
공정위 "법 위반" 시정명령
재계·법조계 "지주회사 역차별"

김리안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마켓인사이트 1월 27일 오전 5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CJ제일제당에 삼각합병 위반으로 시정명령을 내린 이후 재계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2012년 상법을 개정해 기업들의 삼각합병을 허용했지만 공정위가 이에 역행하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 수단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권장해 놓고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 등에서 역차별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삼각합병은 피합병법인(합병으로 소멸되는 회사)의 주주에게 합병법인(피합병법인을 흡수하는 회사) 주식 대신 그 합병법인의 모회사 주식을 대가로 주는 방식을 말한다.

27일 재계와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그룹 지주회사 CJ(주)는 2017~2018년 공동손자회사인 CJ대한통운을 자회사인 제일제당의 단독 자회사로 만들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삼각합병을 활용했다.

구체적으로 제일제당의 자회사인 영우냉동식품이 CJ(주)의 또 다른 자회사 케이엑스홀딩스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영우냉동식품(합병법인)은 케이엑스홀딩스(피합병법인)의 주주(CJ(주))에게 합병 대가로 자사 주식 대신 모회사(제일제당)의 주식을 줬다.이를 통해 CJ(주)는 제일제당의 지분율을 기존 29.5%에서 40.9%로 높였다. CJ그룹은 이후 제일제당과 영우냉동식품을 추가로 합병해 ‘CJ(주)→제일제당→대한통운’으로 이어지도록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CJ그룹의 이런 지배구조 개편은 2012년 정부가 상법상 자회사의 모회사 주식 취득 금지 조항을 개정함으로써 삼각합병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는 당시 상법과 함께 법인세법도 고쳐 삼각합병 활성화를 지원했다. 피합병법인 주주들이 전체 합병 대가의 80% 이상을 모회사 주식으로 받으면 ‘적격합병’으로 인정해 양도세를 내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하며 발목을 잡았다. 공정위는 “영우냉동식품이 합병 대가 지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회사(제일제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것과 삼각합병 직후 영우냉동식품이 대한통운 지분을 20.1% 보유하게 된 것은 공정거래법 제8조의2 4항(지주회사 손자회사의 국내 계열사 지분 소유 금지)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재계 등에선 “지주회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한 IB 관계자는 “삼각합병은 피합병회사를 합병 이후 100% 자회사로 두기 위해 꼭 필요한 방식”이라며 “일반 기업은 삼각합병을 아무 제한 없이 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 정책에 부응한 지주회사들은 역차별을 받는 불합리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공정위가 상법 개정으로 허용된 삼각합병이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고 공정거래법을 함께 개정하지 않아 이런 불합리가 벌어진 것”이라며 “CJ그룹이 아니라 업무상 태만 또는 중과실을 저지른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CJ가 직접 합병 등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삼각합병을 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