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결별] ① 국민투표 후 3년 7개월…EU 탈퇴 현실화

2016년 6월 국민투표…52%가 브렉시트에 찬성표 던져
메이, 의회 반대 못 넘고 사임…존슨, 총선 승부수 끝에 '브렉시트 완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협정에 양측 정상이 정식 서명하면서 이제 브렉시트(Brexit)는 유럽의회의 비준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는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오는 31일 오후 11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영국의 EU 탈퇴가 확실시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 7개월만에, 3명의 영국 총리의 손을 거쳐 마침내 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하는 셈이다.

◇ 국민투표로 브렉시트 결정…영국 사회 분열 드러내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당시 국민투표에는 전체 유권자 4천650만명 중 72.2%가 참가해 51.9%인 1천740만명이 'EU 탈퇴'에, 48.1%인 1천610만명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 결정 배경은 복합적이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그러나 영국은 기본적으로 유럽 공동체에 대한 신념이 약한 데다, EU를 사실상 독일이 주도하는 데 대한 불만도 가지고 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EU를 떠나야 문화와 독립성, 세계 속의 위상 등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울러 제3국과 자유롭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영국이 더 번영할 수 있다고 본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최를 결정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책임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그는 2010년 총선에서 13년만에 노동당을 제치고 보수당이 제1당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면서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보수당 내 전통적인 EU 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연립정부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은 EU 잔류를 지지하면서 이견을 노출했다.

여기에 유로존 위기를 계기로 반(反) EU를 주창한 영국독립당(UKIP)이 급격히 세력을 불리면서 영국 사회에서 EU 회의론이 다시 부상했다.

결국 2013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캐머런 총리는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자 실제 캐머런 총리는 2016년 6월 23일을 투표일로 정했다.

캐머런 총리 역시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결과를 예측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쉽게 이길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국민투표는 영국 사회의 세대와 지역, 계층 간 불화를 드러내면서 EU 탈퇴 결정으로 이어졌다.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도박은 실패했고, 졸지에 그는 영국은 물론 유럽을 위기에 빠뜨린 원흉이 됐다.
◇ '구원투수' 메이 총리 EU와 협상 지휘…의회 반대 못넘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던 캐머런 총리는 막상 결과가 브렉시트로 드러나자 사임을 결정했다.

이에 테리사 메이 총리가 2016년 7월 13일 데이비드 캐머런의 뒤를 이어 영국 총리에 올랐다.

'철(鐵)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나온 영국의 여성 지도자였다.

메이 총리는 2017년 3월 29일 EU의 헌법격인 리스본 조약에서 탈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50조를 발동했다.

50조 1항은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헌법규정에 의거해 EU 탈퇴 결정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50조 3항에는 '탈퇴협정 발표일 혹은 탈퇴 통보 후 2년 경과시점부터 리스본 조약 효력이 중단된다.

단, 회원국 만장일치 시 탈퇴 통보 후 주어지는 기간(2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영국과 EU는 공식 통보일로부터 2년간 탈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통보일로부터 2년 후인 2019년 3월 29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영국은 자동으로 EU에서 탈퇴할 예정이었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약 2년 5개월(29개월), 양측이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지 약 1년 5개월(17개월) 만인 2018년 11월 협상을 마무리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은 크게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EU 탈퇴협정은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 '이혼조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브렉시트 이후 진행될 미래관계 협상의 기본토대에 관한 것으로, 무관세와 양적제한 없는 경제적 파트너십 보장, 상품교역 자유무역지대 조성을 위한 포괄적 준비, 단기 여행 시 비자 면제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과 3월 각각 열린 영국 의회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은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만 따로 하원 표결에 부쳤지만 역시 의회를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EU 탈퇴협정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안전장치'(backstop)였다.

'안전장치'는 영국과 EU가 미래관계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을 엄격히 통제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피하고자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종료시한이 없는 데다, 영국 본토와 달리 북아일랜드만 EU의 상품규제를 적용하게 돼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와 사실상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온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영국이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제3국과 자유로운 무역협정 체결이 제한돼 EU 탈퇴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자 메이 총리는 EU 측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고, 브렉시트는 두 차례 연기 끝에 10월 31일로 미뤄졌다.

이에 급격히 리더십이 약화된 메이 총리는 결국 사퇴를 결정했고,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진영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경선 끝에 총리직을 승계했다.

◇ 존슨 총리 조기총선 승부수 통하며 브렉시트 눈앞

지난해 7월 취임한 존슨 총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10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예정일을 2주가량 앞둔 10월 중순 EU 특별정상회의 직전 EU와 극적으로 재협상 합의에 성공했다.

존슨 총리는 기존 합의안에서 가장 큰 반발이 제기된 '안전장치'를 폐지하는 대신, 북아일랜드를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시장 체계에 남겨두는 방안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말로 설정됐던 브렉시트는 올해 1월 31일로 3개월 추가 연기됐다.

그러나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안 역시 잇따라 하원의 벽에 가로막히자 존슨 총리는 결국 조기 총선 카드를 빼 들었다.
이미 집권 보수당은 하원과반에 못 미치는 의석수로 인해 브렉시트를 포함한 각종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영국 하원 의석수는 총 650석으로, 과반 기준은 326석이다.

보수당 의석은 그러나 의회 해산 직전 기준 300석에도 못 미쳤다.

존슨 총리는 지난해 12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기간 내내 '브렉시트 완수'(get Brexit done)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결정된 만큼 이를 완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3년 넘게 영국의 발목을 잡아왔던 브렉시트 불확실성을 해소해야만 의료, 교육, 치안 등 국민 우선순위에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같은 전략이 먹혀들면서 존슨 총리의 보수당은 총선 캠페인 내내 노동당보다 10%포인트(p)가량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약 100년만에 12월에 열린 조기 총선에서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하원 과반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365석 확보라는 압승을 거뒀다.

야당 모든 의석을 합한 것보다도 80석이 많은 수준으로,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끌던 1987년(376석) 이후 최대 의석을 확보했다.

존슨 총리는 총선 캠페인 기간 약속한 대로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전에 EU 탈퇴협정 법안을 상정했고, 하원의 압도적 지지 속에 최근 의회 모든 입법절차를 완료했다. 이어 법안은 '여왕 재가'를 거쳤고, 영국과 EU 정상이 EU 탈퇴협정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오는 31일 브렉시트를 눈앞에 두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