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치사율 낮지만 확산 빨라…美, 중국전역 여행 금지 검토

이미 中사스 환자수 추월

WHO, 30일 긴급 위원회 재소집
美 항공사, 중국행 항공편 축소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발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중국 본토에서의 확진자 수가 9개월 동안 발병된 사스 감염자 수를 추월했다. 지금 추세라면 이번주 안에 세계 사스 감염자 수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우한 폐렴은 일본 독일에 이어 대만에서 2차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중국 외 국가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각국은 우한에서 자국민 철수 작업을 본격화하고 중국으로의 여행 제한을 검토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9일 오후 6시 전국 30개 성(省)급 행정구역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6055명, 사망자는 132명이라고 발표했다. 하루 새 확진자가 1540명, 사망자는 26명 증가했다. 중증환자가 1239명에 달해 이들에 대한 치료 여부가 전체 사망자 수를 좌우할 전망이다. 2003년 ‘사스 퇴치의 영웅’으로 불리며 이번 우한 폐렴과의 전쟁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앞으로 7일 또는 10일 사이에 우한 폐렴 유행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31일 첫 번째 환자가 보고된 뒤 이날로 발병 30일째를 맞은 우한 폐렴은 사스보다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된 사스는 2003년 7월까지 이어졌다. 9개월 동안 중국에서 보고된 사스 감염자는 5327명이었다. 세계에서 사스에 감염된 사람은 8000여 명이었다.

다만 아직까지 우한 폐렴의 치사율은 사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세계 기준 사스의 치사율은 10% 정도였지만 현재 우한 폐렴의 중국 내 기준 치사율은 2% 수준이다. 우한 폐렴과 사스는 잠복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사스 잠복기가 2~7일로 우한 폐렴보다 짧다고 보고 있다. 우한 폐렴의 잠복기는 일반적으로 3~7일이며 최장 14일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보건당국에 이어 WHO도 우한 폐렴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인정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전날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발열 또는 기침 등 증상이 없는 감염자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WHO는 30일 긴급 위원회를 재소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국제적인 비상사태 선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중국 정부는 공무원 시험까지 연기하며 감염 확산 방지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허베이성 성도인 스자좡시 징징쾅구는 지난 14일 이후 우한에서 돌아온 사람 중 ‘미등록자’를 신고한 이에게 2000위안(약 33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우한이 속해 있는 후베이성은 각종 기업의 춘제 연휴를 2월 13일까지 연장했다. 상하이시와 장쑤성에 이어 광둥성, 저장성은 기업들의 연휴 기간을 다음달 9일까지로 연장했다. 앞서 중국 중앙정부는 이달 30일에서 다음달 2일로 연장했다.

각국도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한 폐렴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중국 여행 제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28일(현지시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중국 여행을 피해달라”는 주의보를 발령했다. 기존엔 우한에 대해서만 이 조치를 발동했지만 이날 중국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미국 항공사들도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 축소에 나섰다. 유나이티드항공은 2월 1일부터 8일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홍콩행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델타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의 국경 일부를 폐쇄하고 본토 관광객의 여행 허가를 중단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28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도착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일본 정부는 28일 전세기를 우한으로 보내 약 200명의 자국민을 태워 29일 하네다공항으로 돌아왔다. 이날 오후엔 두 번째 전세기를 투입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날 우한에서 자국민을 태울 첫 번째 전세기를 띄웠다. 독일 정부도 29일이나 30일께 우한에 군용 수송기를 보내 자국민 90명을 데려올 예정이다.

베이징=강동균/워싱턴=주용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