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발령·총선' 앞두고 청와대 겨냥 수사 일괄처리

조국 '가족 비리' 의혹 수사 본격화 이후 155일 만에 일단락
검찰이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등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29일 대체로 마무리했다.다음 주 검찰 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이동과 4·15 총선이 다가오는 점을 고려해 사회적 이목이 쏠린 주요 사건을 일괄 처리한 것이다.

지난해 8월27일 대규모 압수수색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비리 의혹 수사가 본격화한 지 155일 만이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한 현 정권 주요 인사들을 겨냥해 중첩적으로 이어진 검찰의 수사는 일단락된 모양새다.수사는 세 갈래였다.

조 전 장관의 가족비리 의혹 사건 관련자들이 가장 먼저 재판에 넘겨졌고,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과 감찰무마 의혹 사건은 최근까지 주요 관련자들의 사법처리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채 수사가 진행돼 왔다.

좀처럼 결론이 드러나지 않던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과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이날 한꺼번에 기소 대상자를 추려 재판에 넘겼다.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가 이날 오전 송철호 울산시장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감찰무마 의혹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이날 오후 백 전 비서관과 박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두 사람은 앞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공범 관계다.검찰이 두 사건의 주요 관련자들을 같은 날 기소하면서 청와대와 여권을 겨냥한 수사를 사실상 매듭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와 처분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가 선거에 미칠 영향을 줄 가능성을 고려해 두 사람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은 총선 이후에 정하기로 했다.

검찰이 두 사건 관련자들을 이날 무더기로 기소한 배경을 두고 법조계에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단 검찰이 설명한 것처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선거에 불필요한 영향을 준다는 판단에 따라 두 사건의 처리를 서두른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수사팀이 대폭 교체되는 다음 달 3일 중간간부·평검사 인사 전에 사건을 마무리할 필요성을 느낀 검찰이 이날 두 사건을 일괄 처리하기로 결정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대검찰청에서 두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박찬호 공공수사부장과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이 올해 초 검찰 고위간부 인사로 교체된 상황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중간간부인 대검 과장들과 수사팀을 지휘한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 홍승욱 서울동부지검 차장 등도 모두 다음 주 인사이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수사팀과 지휘부의 진용이 크게 바뀌면 수사뿐 아니라 공소유지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검찰이 두 사건을 발빠르게 일괄 처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최근 두 사건의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검찰 내부의 의견 충돌이 벌어지고 법무부와 갈등을 빚은 점 역시 검찰의 사건 처리를 재촉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검찰이 지난 23일 기소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내홍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윤 총장의 지시에 따라 최 비서관을 기소했지만, '대면 조사 없이 기소할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결재를 건너뛴 것으로 드러났다.

윤 총장과 이 지검장 사이의 의견 충돌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도 재연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전날 기소 대상자를 이 지검장에게 보고했지만, 이 지검장은 결재를 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검찰 간부회의에서도 이 지검장은 선거개입 의혹 사건 관련자 기소에 동의하지 않았다.

윤 총장은 수사팀과 다른 대검 간부들의 의견에 따라 기소를 지시했고, 수사팀은 법원에 공소장을 접수했다.

감찰무마 의혹 사건도 대검 지휘부와 수사팀 간 마찰이 있었다.

심재철 신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지난 16일 대검과 서울동부지검 수사 지휘부가 모인 회의에서 조 전 장관이 무혐의라는 취지로 주장했다가 수사팀의 반발에 부딪혔다.

심 부장은 백 전 비서관 기소를 미루자는 의견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검찰 내부의 불협화음과 더불어 법무부와의 갈등 역시 검찰이 사건 처리를 서두른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강욱 비서관을 검찰이 기소할 때 이성윤 지검장의 결재를 받지 않은 것을 두고 '날치기 기소'라고 비판한 데 이어 중요 사건을 처리할 때 검찰 내·외부의 협의체를 활용해 의견을 수렴하라고 당부했다.

추 장관이 제시한 협의체 활용 방안은 전날 대검 등 전국 66개 검찰청에 공문으로 하달됐다.이처럼 법무부가 검찰의 수사와 사건 처분 과정을 문제 삼는 상황이 이어지자 수사의 동력이 더 약화할 것을 우려한 검찰이 한꺼번에 사건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