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한 폐렴, 학생에겐 '과잉대응'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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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없다"며 개학 강행한 정부“정부 차원에서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른 선제적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잠복기 등 감안해 연기했어야
정의진 지식사회부 기자 justjin@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 저지를 위해 내린 지시다. 설 연휴 기간 국내 우한 폐렴 확진자가 4명으로 늘어나자 선제적인 조치를 당부한 것이다.교육계에선 문 대통령의 말이 ‘공염불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겨울방학 개학 시즌을 맞아 학교를 통한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개학 연기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 시민청원 홈페이지엔 개학 연기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30일까지 30여 건 올라왔고, 가장 먼저 게시된 청원은 닷새 만에 49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각종 맘카페에서도 ‘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있다’며 학교를 통한 전염을 우려하는 학부모의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전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2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관계장관회의 이후 개학 연기 조치를 내리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정부는 그 이유로 “지역사회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고, 범정부적인 방역체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은 전염을 예방하기보다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 차후에 대응하겠다는 의미여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특히 중국에 다녀오지 않고도 우한 폐렴에 걸린 2차 감염자가 3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만큼 ‘지역사회 내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섣부른 판단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됐다.
의료계에선 우한 폐렴 잠복기가 최대 2주에 달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감염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 네 번째 우한 폐렴 확진자는 지난 20일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엿새 동안 최소 172명과 접촉했다.
일부 학교는 학교장 재량으로 개학 연기 결정을 내리고 있다. 서울에선 30일 기준 7개 초등학교와 2개 유치원이 개학을 2~5일씩 미뤘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602개 초등학교 가운데 534개(89%) 학교, 812개 유치원 가운데 754개(93%) 유치원이 이달 개학하는 만큼 학교에서의 전염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우한 폐렴은 아직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잠복기가 길고 의학적 분석작업도 시작 단계여서 최대한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동이 개학 이후 집단생활을 하면서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예방의 ‘골든타임’을 이미 놓친 뒤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선제적인 개학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 휴교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