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워라밸'이 곧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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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산책영국 최고 고전학자로 꼽히는 에디스 홀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성공회 성직자의 딸로 태어났지만 열세 살 때 신앙을 잃었다.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려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는 실체를 숭배해야 한다는 교회의 강요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이런 홀을 고전학자로 이끈 것은 학부 때 ‘발견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외적인 신성이 창조한 세상이 아니라 과학을 통한 물리적 세상, 인간의 기준에 의한 도덕으로 구축된 세상을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깊이 공감해서였다.
에디스 홀 지음 / 박세연 옮김
예담아카이브 / 320쪽 / 1만8000원
《열 번의 산책》은 서양철학의 거대한 기둥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론, 행복에 대한 고대의 지혜와 사상을 오늘의 일상 언어로 풀이한 안내서다. 저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하다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주관적 행복의 의미를 참구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러면서도 이론과 경험의 조화와 상호보완을 통한 완성을 추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소요학파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소요’는 그리스어로 ‘산책하다’라는 뜻의 동사 peripateo에서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어다니면서 생각하기를 즐겼고, 사색을 통해 삶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동물, 과학과 우주 등의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이는 그가 철학자이자 경험주의 자연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저자는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발한 정교한 프로그램을 오늘날의 필요에 맞게 보여준다. 잠재력, 의사결정, 입사지원서 쓰기, 면접에서의 의사소통, 성격 분석,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친구와 파트너 선택하기 등 일상의 다양한 실천 과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으로 검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를 발견하고, 최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따라서 개인은 스스로 도덕적 주체이며, 행복을 위해 노력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반성 없이 본능적으로 사는 것이며, 자동항법장치에 몸을 맡긴 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잠재력의 실현을 중시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디나미스(dynamis)라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서 성숙한 형태로 성장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도토리는 나무로 성장할 디나미스를, 달걀은 닭으로 클 디나미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dynamic이 여기서 유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하고 우월한 디나미스를 ‘이성적 잠재력’이라고 하면서 각자는 이를 확인하고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토대로 선택과 계획을 통해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자신에게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또한 집단지성과 이론이 잠재력을 극대화하며, 잠재력 실현을 위해서는 교육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잠재력의 실현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특히 강조한 것이 여가다. 그는 여가는 일보다 중요하며 스파르타가 평화기에 반성하지 못한 것은 시민들을 전투에 능한 인력으로만 훈련시키고 ‘게으름을 부리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지 않아서라고 했다. 여가는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롭도록 허락된 시간이며, 인간의 완전한 잠재력이 실현되는 것은 오로지 여가시간을 통해서라는 것, 노동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여가는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의사결정을 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숙고를 하기 전에 필요한 것이 있으니 구체적인 목표와 선택권이다. 이른 전제 아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급하게 숙고하지 말 것, 모든 정보를 검토할 것, 전문가와 상담하고 조언에 귀를 기울일 것,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것, 모든 선례를 검토할 것, 예상 가능한 모든 결과에 대비할 것, ‘운’이라고 부르는 무작위의 요인에 대해서도 생각할 것 등을 지침으로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도 배울 게 있다. 저자는 입사지원서를 회사로 보내기 전에 큰 소리로 한번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글은 읽기 또는 말하기 쉬워야 한다”며 “문장은 너무 짧으면 독자를 거슬리하게 하고, 너무 길면 독자가 그 의미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저자는 이 밖에도 정의와 용기, 자기통제력을 통해 행복을 끌어올리는 길, 질투·시기·화·분노·복수·모욕과 유머를 다루는 방법, 애착과 욕망을 넘어 중간을 추구하는 길, 죽음을 대하고 준비하는 자세 등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준다. 저자의 해박하고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와 조금은 친밀해진 느낌이 든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