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전세기 중국 '엑소더스' 우려에 지연?…설익은 발표도 논란

30일·31일에 2대씩 전세기 4대 띄운다는 계획 차질…중국 "한대씩 순차적으로"
중국과 협의없는 발표로 교민 혼란…협의 빨랐지만, 전세기 투입은 미·일에 뒤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과 인근 지역 체류 한국인 700여명을 데려오기 위한 전세기 운항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정부는 지난 28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우한 폐렴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오는 30일과 31일 각 2차례씩 모두 4차례 전세기를 띄워 교민들을 국내로 수송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당초 30일 오전 10시와 정오에 1대씩 전세기를 보내려던 계획은 중국 측이 29일 저녁 "1대씩 순차적으로 보내자"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면서 어긋났다.

계획이 틀어지면서 우한 현지에서 전세기를 기다리던 교민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계획이 변경된 배경과 관련, "중국 측은 미국의, 또 일본의 다수 임시항공편 요청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1대 허가를 내주고 순차적으로 요청을 받는 식의 방침으로 운영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도 수차례 전세기 운항 계획이 바뀌었다"면서 한국만 특별히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본도 당초 2대의 전세기를 한꺼번에 투입하려 했지만, 중국 측의 반대로 1대를 순차 운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상황으로 비춰볼 때, 중국 당국이 외국에서 전세기를 대거 투입해 '엑소더스(대탈출)'가 빚어지는 모양새는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 투입하는 전세기가 대부분 야간을 이용해 우한을 오가고 있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8일 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통화하고 한국인 귀국 지원 등 안전확보를 위해 중국 측이 계속 협력해달라고 당부까지 한 터라 전세기 출발이 지연되는 상황이 더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일각에선 정부의 지난 28일 전세기 운항계획 발표가 중국과 협의가 가닥이 잡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물론 당시 계획을 발표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은 "구체적인 날짜는 중국 측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정부가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설익은 상태에서 발표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때는 미국 및 일본도 전세기를 1대씩 운항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서 하루에 2대씩 전세기를 띄우겠다는 한국 정부의 구상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틀에 걸쳐 4대의 전세기를 보내겠다는 것은 추진방안이었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준비했지만, 이에 대해 중국의 (1대씩 보내자는) 입장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한국의 외교력에 의문을 표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국은 우한 폐렴 사태가 터지자 신속하게 중국 측과 전세기 운항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아마 최고 빨리 전세기 이야기를 꺼낸 나라가 대한민국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정세균 총리 주재 긴급회의에서 우한에 발이 묶인 교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 투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그 직후 중국 측과 외교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의 전세기는 미국 및 일본보다 늦게 이뤄졌다.

미국은 지난 28일 첫 전세기가 우한에서 출발했고, 일본도 28일 첫 전세기가 우한으로 향했다.

이와 관련, 30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한 간부는 "우선 미국과 일본이 (전세기) 발착 몫을 배정받았다"며 "중국이 어떤 나라를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과 일본을 한국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전세기 배정에서 밀렸다는 의미다.이에 대해 외교 소식통은 "외교력에서 밀렸다기보다는 한국은 이틀에 걸쳐 4대를 띄워 신속하게 교민들을 데려오기를 원하면서 이 방안을 중국과 협의하다 보니 늦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