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절제된 검찰권? 경제 살리는 데 써 봐라

누구를 위한 절제된 검찰권인가
직권남용보다 더 모호한 게 배임
실패를 벌하면 혁신성장 불가능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지만 돌아가는 정황은 절제된 검찰권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을 갖게 한다. 검찰 개혁을 찬성하는 국민조차 절제된 검찰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 또는 정권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라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직권남용죄만 해도 그렇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상고심에서 일부 직권남용 혐의를 무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지시를 내린 상대가 공무원이나 유관기관 직원이라면 법령과 규정에서 정한 절차를 벗어나지 않았을 경우, 형법상 직권남용죄의 구성 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모든 공직자를 잠재적 피의자로 만든다는 직권남용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을 두고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남용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대법원은 어떤 직무 권한과 남용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직권남용죄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앞으로도 검찰이 직권남용죄로 걸 때 재판부의 개별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직권남용죄를 이용해 정치 보복을 하거나 정책 판단의 희생양을 찾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정치적 해석에 눈길이 더 쏠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절제된 검찰권을 말하는 의도가 얼마나 의심스러우면, 직권남용죄가 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하자 대법원이 적용범위를 좁혀 ‘사전 대비’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법리의 모호성으로 치면 배임죄는 직권남용죄보다 훨씬 더하다.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조직에 손해를 입히면 처벌한다는 게 업무상 배임죄다. 불행히도 열심히 일할수록 배임죄에 걸려들기 쉬운 게 한국의 현실이다. 모호한 영역은 손대지 않는다는 선진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기업인을 털어 뭐가 안 나오면 마지막에는 배임으로 걸어서라도 잡아넣고야 마는 게 한국의 검찰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배임죄의 마법이다.검찰이 얼마나 배임죄를 마구 휘둘렀으면 밖에서는 한국 기업인들을 죄다 잠재적 피의자로 여길 정도다. 실패한 경영판단이라도 있으면 배임죄로 걸기 딱 좋다. 금융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무슨 세계적인 모험 벤처기업이 나오고 혁신금융과 혁신성장이 가능하겠는가?

검찰은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여념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무력화시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공정거래 관련 사건에서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은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활동과 시장의 자율성 위축을 막기 위한 제도다. 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까지 발동해 수사하던 검찰이다. 이런 검찰이면 법 개정이 이뤄지기 무섭게 온갖 사적 분쟁에 개입해 판칠 게 불 보듯 뻔하다.

법무부와 공정위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동의했다. 검찰권의 무분별한 개입 우려에 법무부는 “경제분석과 자진신고 등을 담당할 전문 부서와 인력을 확충해 시장에 대한 형벌권 발동이 적정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을 기업인이 얼마나 있을까?입만 열면 경제 활성화를 말하는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묻고 싶다. 한 번이라도 기업인 수사에서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 기업인을 일단 잡아넣고 보는 검찰권 행사에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한 검찰권 행사는 절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