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이어 배터리·디스플레이·반도체…우한發 '도미노 가동중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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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부품 조달 차질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에 따른 생산차질 사태가 전 산업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중국산(産)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긴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들이 생산라인을 멈춰 세우는 ‘셧다운’을 선언한 가운데 배터리,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 기업 역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제2, 제3의 공급처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품질, 가격 등이 맞지 않아 당분간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업계에선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하면 납품 물량·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중국 부품회사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한국 기업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현대차 가동 중단, 기아차 감산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르면 4일부터 일부 국내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하언태 현대차 국내생산담당 사장은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담화문에서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휴업이 불가피한 비상상황”이라고 밝혔다. 하 사장은 “중국 기업들이 직원들의 출근을 제한하고 있어 당사(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일부 업체의 생산 중단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공장별 또는 라인별 휴업 시행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지난 1일 주말특근도 취소했다.
'셧다운 사태' 全산업 확산
현대·기아車 휴업 땐
부품사들 자금난 가중 불가피
기아차 사정도 비슷하다. 기아차는 이날부터 화성공장과 광주공장 일부 라인에서 빈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일부 생산라인을 세우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쌍용차는 이미 평택공장 가동중단(4~12일)을 결정했다. 1일 주말특근을 취소한 한국GM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주 공장 가동은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체는 이달 말이 고비배터리 업체도 줄어드는 원재료 재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장쑤성 정부 지침에 따라 오는 9일까지 창저우 공장 가동을 멈춘다. 장쑤성 관내에 있는 옌청 공장 신축도 중단됐다. LG화학도 난징 공장 문을 9일까지 닫는다.
배터리 업체들은 원재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재고를 한 달치 정도 확보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음극재 등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원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다음달부터 한국 공장 운영도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일부 기업이 일본 업체 등으로 공급처 다변화에 나섰지만, 생산라인 테스트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당 기간 ‘원료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디스플레이 업체 역시 ‘초긴장’ 상태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옌타이 공장뿐만 아니라 난징 공장도 지난 주말부터 세워놓고 있다. 회사 측은 광저우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의 생산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올 1분기(1~3월)로 예정했던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공장 가동 여부도 불투명해졌다.가전 업체 중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춘제 연휴로 멈춘 중국 공장을 10일부터 재가동할 계획이다. 일부 신제품을 제외하곤 재고가 당장 부족하지 않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은 가동 중단이 장기화하면 중국 생산 물량을 베트남으로 돌리는 등 생산지 전략을 재조정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진출한 반도체 기업들도 원재료 수급 관련 시나리오와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
산업계에서는 ‘우한 폐렴’발 셧다운(가동중단)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 기업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당장 ‘생산절벽’에 직면한 한국 자동차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 가동이 장기간 중단되면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부품사가 연쇄 도산할지도 모른다”며 “자칫 자동차산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반도체 경기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대기업 납품사 고위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1차 부품 공급사 대부분이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자동차에서 시작된 생산 중단 사태가 향후 배터리,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업계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황정수/도병욱/김재후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