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우한 폐렴' 신속 대응한 미국 vs 초라한 민낯 드러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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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을 보고 받은 크리스 브래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센터장은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역학조사관을 투입했다. 이때부터 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와 미국 각주의 보건당국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취합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CDC 상황실에 보냈다. 브래든 CDC센터장의 협조 요청에 국토안보부, 국무부, 국방부, 보건복지부, 연방재난청, 관세청 등 정부 각 부처는 즉시 인력을 파견했다.
브래든 CDC 센터장은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군사령관처럼 전권을 가지고 '방역작전'에 임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 입국금지, 우한 폐렴 발생지역에 거주했던 귀국자 1000여명의 군사시설 격리 등이 그가 내린 결정이다. 물론 최종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내려졌지만,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CDC 센터장의 요청이 거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염병 위기 단계를 격상하거나 군대 파견 및 지역 통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CDC 센터장이 대통령과 정치인, 장관 등에게 보고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벗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윗선 보고'는 '선(先) 조치·후(後) 보고'가 일반적이다. "전문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미국 사회의 인식이 그대로 엿보인다.반면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권한도 없고, 관료와 정치인에 휘둘리는 '초라한 민낯'을 노출시켰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 주요 간부들이 비전문가인 행정 관료를 이해시키고, 국회와 정부 부처에 불려다니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질본의 든든한 손발이 되어줄 시·도 역학조사관마저 제대로 충원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아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중국 후베이성 방문자와 체류자에 대한 입국금지 등 주요 결정에서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밀려 질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판 CDC'를 표방하는 질본이 막상 제 역할을 해야할 때 뒷전에 밀려나고 있다. 제대로 된 권한과 인력도 예산도 없는 '3무(無) 본부'라는 내부의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KCDC)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발생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다. 한국은 사스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를 설립했고, 미국은 CDC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미국 CDC도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처럼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조직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질병 전쟁 사령관'에 걸맞은 조직으로 환골탈태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초기 대응에 다소 늦어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다. '국민의 안전 뒤에는 CDC가 늘 있다'는 미국 국민들의 인식이 확고하다.한국의 질본은 이름과 조직 구성 등에서 미국 CDC를 거의 따라하고 있지만 겉모습만 벤치마킹하고 있다. 적절한 인력, 권한, 예산이 없는 데다 전문인력마저 부족해 '3무가 아닌 4무 본부'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사스, 에볼라, 우한 폐렴 등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질본과 보건복지부 사고수습본부, 국무총리실 상황관리실,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등이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컨트롤타워가 도대체 어디냐"는 아우성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더 늦기 전에 2015년 '메르스 교훈'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당시 전문가를 비서처럼 대동하고 어설픈 정책을 쏟아내던 복지정책 전공의 보건복지부 장관 등 행정관료와 정치인들이 사태를 악화시켜버렸다.
지금은 상황이 얼마나 다른가. 우한 폐렴 사태가 수습된다면 제일 먼저 질본의 위상부터 강화해야 한다. 관료에 휘둘리지 않고 감염병 전문가가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려면 현실적으로 질본 만한 정부 조직이 없다. 원래 감염병 대처 등을 위해 만든 것이 질본 아닌가. 전문가가 내려야 할 시급한 결정에 '정치'가 끼어들면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잇단 재난적 대응에도 정부의 인식이 고쳐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바꾸지 않는다면 우한 폐렴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 대응은 갈팡질팡·주먹구구·뒷북행정을 반복할 것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브래든 CDC 센터장은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군사령관처럼 전권을 가지고 '방역작전'에 임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 입국금지, 우한 폐렴 발생지역에 거주했던 귀국자 1000여명의 군사시설 격리 등이 그가 내린 결정이다. 물론 최종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내려졌지만,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CDC 센터장의 요청이 거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염병 위기 단계를 격상하거나 군대 파견 및 지역 통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CDC 센터장이 대통령과 정치인, 장관 등에게 보고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벗어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윗선 보고'는 '선(先) 조치·후(後) 보고'가 일반적이다. "전문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미국 사회의 인식이 그대로 엿보인다.반면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권한도 없고, 관료와 정치인에 휘둘리는 '초라한 민낯'을 노출시켰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 주요 간부들이 비전문가인 행정 관료를 이해시키고, 국회와 정부 부처에 불려다니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질본의 든든한 손발이 되어줄 시·도 역학조사관마저 제대로 충원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아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중국 후베이성 방문자와 체류자에 대한 입국금지 등 주요 결정에서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에 밀려 질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판 CDC'를 표방하는 질본이 막상 제 역할을 해야할 때 뒷전에 밀려나고 있다. 제대로 된 권한과 인력도 예산도 없는 '3무(無) 본부'라는 내부의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KCDC)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발생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다. 한국은 사스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를 설립했고, 미국은 CDC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미국 CDC도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처럼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조직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질병 전쟁 사령관'에 걸맞은 조직으로 환골탈태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초기 대응에 다소 늦어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다. '국민의 안전 뒤에는 CDC가 늘 있다'는 미국 국민들의 인식이 확고하다.한국의 질본은 이름과 조직 구성 등에서 미국 CDC를 거의 따라하고 있지만 겉모습만 벤치마킹하고 있다. 적절한 인력, 권한, 예산이 없는 데다 전문인력마저 부족해 '3무가 아닌 4무 본부'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사스, 에볼라, 우한 폐렴 등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질본과 보건복지부 사고수습본부, 국무총리실 상황관리실,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등이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컨트롤타워가 도대체 어디냐"는 아우성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더 늦기 전에 2015년 '메르스 교훈'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 당시 전문가를 비서처럼 대동하고 어설픈 정책을 쏟아내던 복지정책 전공의 보건복지부 장관 등 행정관료와 정치인들이 사태를 악화시켜버렸다.
지금은 상황이 얼마나 다른가. 우한 폐렴 사태가 수습된다면 제일 먼저 질본의 위상부터 강화해야 한다. 관료에 휘둘리지 않고 감염병 전문가가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려면 현실적으로 질본 만한 정부 조직이 없다. 원래 감염병 대처 등을 위해 만든 것이 질본 아닌가. 전문가가 내려야 할 시급한 결정에 '정치'가 끼어들면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잇단 재난적 대응에도 정부의 인식이 고쳐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바꾸지 않는다면 우한 폐렴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 대응은 갈팡질팡·주먹구구·뒷북행정을 반복할 것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