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ㅣ'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한테 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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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방 앞에서 소용돌이 치는 인간의 욕망눈앞에 돈 가방이 '뚝'하고 떨어진다면 어떻게 할까.
전도연과 정우성, 윤여정, 배성우…믿고 보는 배우들
탄탄한 전개에 뒤통수 반전까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가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돈 가방을 마주한 후 하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에 시달리는 태영(정우성), 아버지가 물려주신 횟집이 망한 후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장 중만(배성우), 과거를 지우고 새 삶을 살고 싶어하는 술집 마담 연희(전도연), 빚 때문에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미란(신현빈)까지 영화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옴니버스 같던 영화는 극이 진행될수록 촘촘한 관계성이 드러난다.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속고, 속이는 예측불허 상황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오프닝은 중만이 연다. 어느 날처럼 사우나 탈의실을 청소하던 중만은 손님이 락커에 놓고 간 돈가방을 발견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가져가지 않는다. 남의 것을 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아는 평범한 양심을 가진 '보통' 사람이기 때문.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탈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돈 가방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위탁물 관리실 구석 깊은 곳에 놓아두는 것 정도였다. 태영은 '호구'다. 남들이 보기엔 평택국제항에서 출입국 관리를 하는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지만, 술집 마담이었던 여자친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모든 빚을 떠안게 됐다. "내장을 생으로 먹는 걸 좋아한다"는 사채업자의 섬뜩한 협박에 벌벌 떨고, 자신에게 밀항을 문의한 고교 동창을 또 다른 호구로 삼으며 한탕을 꿈꾼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찰이 나타나자 당황하며 주저한다. 그 역시 보통 사람이었다. 미란은 투자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술집에 나가 월급을 미리 당겨 받으며 생활한다. 남편을 죽이고 그 보험금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현시킬 용기도, 실행력도 없던 인물이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던 캐릭터들을 하나로 엮는 연결고리는 연희다. 연희는 태영의 사라진 여자친구이자 미란이 일하던 술집의 사장이다. 그리고 중만이 발견한 돈가방의 실마리를 가진 인물이다. 영화는 연희 등장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그의 등장 이후 급격한 전개를 선보인다.
친절하진 않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다. 느와르 색채가 강하지만 남성 캐릭터가 아닌 연희라는 인물이 극의 중심에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가장 폭력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 역시 연희다. 극의 절반 밖에 나오지 않지만 연희 역의 전도연의 이름이 크레딧 가장 앞에 나오는 이유다.여기에 전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만, 어느 배우 하나 이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생일'에서 아이를 잃은 아픔을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전도연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주정을 부리는 남자 손님에게 "네가 먼저 때린 것"이라며 술병을 머리에 내리치고, '증인'의 착한 변호사 정우성은 여자에게 배신 당하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느라 나사가 반쯤 빠져있는 태영으로 분해 블랙 코미디를 전담한다.
'변신'의 신뢰감있는 퇴마 사제 배성우, '좋아하면 울리니'의 순수 담당 정가람,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 차승원의 아내로 등장했던 청순한 신현빈까지 앞서 보여준 캐릭터를 완벽하게 지웠다. 여기에 존재 자체로 신뢰감을 주는 윤여정과 진경까지 활약한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답게 피가 낭자하고, 선정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더 자극적으로 갈 수 있는 상황에서 한 템포 쉬고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용훈 감독은 "우리 영화가 사람이 많이 죽지만, 그걸 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며 "관객들이 보기 편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런닝타임 108분. 오는 12일 개봉.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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