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딸 우한서 무사 귀환 빌며 현수막·리본 내건 진천 부모

1차 전세기 이륙 늦춰지고 주민 교민 수용 한때 반대해 노심초사
인재개발원 입소 딸 "안전하고 부족함 없어"…부모 "이웃에 베풀며 살겠다"

충북 진천에서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는 A(67) 씨와 부인 B(61) 씨 부부는 요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사지'(死地) 와도 같았던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딸 C(34) 씨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1일 무사히 귀국,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중국 의사고시에도 합격한 C 씨는 2018년 2월 피부과 의사로 취업하면서 우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 측이 아파트도 마련해 줄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던 C 씨는 중국의 설날인 춘제(春節)를 앞둔 지난달 초부터 우한의 신종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집과 병원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던 C 씨는 근무하는 병원이 일주일간 소독을 한다며 운영을 중단하자 음식과 과일, 물을 충분히 확보해 이후 열흘가량을 집에서만 머무는 '셀프 격리 생활'을 했다.

그러다 우한이 마침내 봉쇄되면서 C 씨와 진천에 있는 그의 부모는 점점 불안해졌다.

지난달 26일 정부가 전세기로 우한 교민을 귀국시키기로 하고 1차 전세기 탑승자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면서 안도했던 C 씨와 가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지난달 30일 오후 이륙하기로 했던 전세기 출발이 중국 당국의 허가 지연으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애타게 딸의 귀국을 고대하던 A 씨 부부를 힘겹게 한 것은 또 있었다.

우한 교민 수용시설로 확정된 진천과 아산 주민들이 정부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어머니 B 씨는 "딸이 무사 귀국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만, 신종코로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우한 교민 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 심정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반대에 심한 충격을 받았지만 원망할 수도 없어 온 가족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아버지 A 씨는 주민들에게 내색도 못 한 채 집 앞 나무에 '환영 집으로'라는 글이 적힌 현수막과 노란 리본 수십 개를 내걸고 딸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도했다.

이들 부부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1차 전세기는 마침내 31일 오전 8시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절대 반대'를 외치던 아산과 진천 주민들도 반대 현수막과 천막을 스스로 철거하면서 마음의 빗장을 열어 정부의 수용 결정을 받아들였다.
집과 가까운 진천 인재개발원에 수용된 딸 C 씨는 현재 수시로 식단과 간식, 지급받은 물품을 찍은 사진을 보내며 가족을 안심시키고 있다.

B 씨는 "우한에서 홀로 격리되다시피 한 생활을 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딸이 진천 인재개발원에 들어온 이후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전했다.

도시락으로 받는 식사와 호두과자 등 간식은 질이 좋고 생필품도 부족함이 없다는 C 씨는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교민 수용을 위해 준비하고 대처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나라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부모에게 밝혔다.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던 1차 귀국자 가운데 1명이 확전 판정을 받았지만, 진천 인재개발원에 머무는 교민들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내부 분위기도 C 씨는 전했다.
C 씨는 "귀국 비행기에서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하지 않았으며, 인재개발원에서는 의료진이 매일 건강을 체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며 "중국에서 돌아와 이렇게 지내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어머니 B 씨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고 교민들을 보듬어주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 가족 모두 정신적으로 성숙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더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B 씨는 "매주 화요일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가는데 늦었다"며 기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