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흐·마그리트 그림에서 발견한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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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리쿠르고스의 컵’은 4세기께 로마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 속 왕을 조각해 덧붙였다. 평소에 녹색으로 보이는 이 컵은 안쪽에 빛을 쪼이면 붉게 변한다. 빛의 산란이 금속 나노입자 크기나 모양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금과 은을 나노입자 크기로 연마하는 기술은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됐다. 금속입자에 따른 색의 변화는 바이오센서 등 과학기술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는 제목 그대로 물리학자가 쓴 미술책이다. 넘기는 책장마다 미술 작품 사진이 즐비하다. 그 사이사이에 원자모형이 있고 태양의 흑점 사진과 음의 파동 그래프도 보인다. 저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나노-정보 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나 학회 참석차 해외에 나갈 때마다 미술관을 찾은 그는 많은 예술가에게 큰 영감을 준 ‘뮤즈’는 다름 아닌 ‘물리학’임을 깨달았다. 책을 통해 그 융합의 원리를 풀어낸다.저자는 르누아르와 모네가 같은 시기에 같은 풍경을 보고 그린 ‘라 그르누예르’를 비교하면서 표면장력과 중력이 수면에 만든 파동을 설명한다. 파동은 어떻게 생기고, 파동이 전파될 때 매질의 움직임은 어떤지, 왜 그러한지로 서술은 이어진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신’으로 현대물리학의 큰 축인 양자역학을 풀어내고 고흐의 그림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통해서는 다양한 빛의 파장을 들여다본다.
물리학은 한자 그대로 ‘사물’의 ‘이치’를 파고드는 학문이다.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자와 예술가의 일은 다르지 않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만물의 본질을 서로 다른 각자의 언어로 풀어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점묘법을 개발한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가 남긴 한 문장으로 이런 자신의 생각을 대변한다. “누군가는 내 그림에서 시(詩)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 보았다.” (서민아 지음, 어바웃어북, 414쪽, 1만8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