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파는 실격" 이란, 총선 앞두고 후보 사상 검증 논란 [선한결의 중동은지금]

이란헌법수호위, 총선 예비후보 대거 '부적격' 판정
"이슬람에 대한 충성심 부족해 실격" 주장
중도개혁파 위주 탈락…"경쟁 없이 정권 차지하려 해"
이란 정계에서 오는 21일 이란 총선을 앞두고 내부 갈등이 커지고 있다. 대(對)서방 강경파와 종교주의 보수파들이 최근 미국과의 갈등을 기회로 보고 중도·개혁파 축출에 나서서다.

이란 정계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알리 모타하리 이란 의회 의원은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나를 비롯해 개혁파 등 의원 여럿의 총선 출마를 막았다”며 “헌법수호위원회가 언론과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타하리 의원은 이란 정계 명문가 출신으로 10여년간 이란 의회 의원을 맡고 있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는 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FT는 “모타하리 의원은 이란 이슬람혁명 주역이었던 이슬람성직자 모테자 모타하리의 아들이고, 10년 이상 의원직을 맡았던 인물”이라며 “그러나 그조차도 헌법수호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지난달 총선 후보 심사에서 예비 후보자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이란은 총선과 대선 전 헌법수호위원회가 후보를 심사한다. 후보자가 신청서를 내면 내무부의 초기 검토를 거쳐 헌법수호위원회 검증을 받는 식이다. 선거 입후보자 기준은 나이가 30~75세이고, 석사 학위가 있는 인물이다. ‘이슬람 종교와 이란에 대한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예비 후보자 1만4000여명 중 9000여명의 총선 입후보를 금지했다. 의회 현역 의원 90명도 포함됐다. 이란 의회 총원 290명 중 3분의 1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FT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입후보를 금지한 이들에 대해 ‘이슬람과 이란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된다’는 근거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예비후보엔 횡령과 뇌물 수수 등 금융 범죄를 벌였다고 지목했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사실상 총선에서 개혁파 출마를 막기 위해 ‘꼼수’를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입후보 검증에서 탈락한 이들 대부분이 중도·개혁파라서다. 모타하리 의원도 그간엔 보수파로 꼽혔으나 최근 개혁주의를 일부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심사에서 탈락했다.

FT는 “중도·개혁파 의원들 중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대부분 개혁파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선거구에 입후보할 이들”이라며 “개혁파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선 출마 실격자가 대거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중도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이란 종교주의의 핵심인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서로 간접 설전을 벌이는 이례적인 일도 나오고 있다. 이란 국영통신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최근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선거 관련 권한을 개정하는 법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FT엔 “강경파들은 ‘차기 국회는 100% 우리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내가 우려하는 것은 국회가 모두 그들의 것이 되는게 아니라, 그들이 최소한의 경쟁도 거치지 않고 의석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헌법수호위원회 편을 들고 있다. 그는 지난 5일 “이란 차기 의회에는 적국에 목소리 내길 두려워하는 자들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FT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겐 헌법수호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예비 후보에게 선거 출마를 허용할 권한이 있지만, 그가 실제로 그 권한을 써 상황에 개입할 기미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치평론가이자 언론인인 사이드 레이라즈 샤히드베헤스티대 교수는 “미국이 이란을 전례없을 정도로 강하게 압박하면서 반작용으로 이란 급진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