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반전세 열풍'…거래 늘고 가격도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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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세 지수 상승률 역대 최고서울 강남에서 전용 50㎡ 재건축 대상 아파트와 전용 84㎡ 중고아파트를 소유한 이모씨(66)는 작년 3000만원이 넘는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를 냈다. 최근 2~3년 새 세금이 두 배 넘게 올랐다. 거래하는 세무사로부터 올해 보유세는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뛸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는 세금을 감당하려면 임대료를 올리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판단해 중고아파트를 전세에서 보증부월세(반전세)로 돌렸다. 이씨는 “부부가 모두 정년퇴직해 일정한 수입이 없는 데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만 셋”이라며 “내야 할 세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종부세만 7000만원 가까이 될 것이란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집주인 "월세 받아 종부세 내자"
전셋집→반전세로 속속 전환
반전세 거래 급증최근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보증금과 함께 매달 월세를 받는 방식의 임대차 거래가 늘고 있다. 이씨처럼 보유세 인상분을 월세로 충당하려는 집주인이 많아져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보증부월세 거래 건수는 작년 10월 1441건에서 12월 1768건으로 23% 늘어났다. 대치동 K공인 대표는 “‘종부세가 많이 나와서 부담된다’며 기존에 내놨던 전셋집을 보증부월세로 전환한 집주인이 여럿 있다”며 “지금 나와 있는 매물 10건 중 9건이 월세 또는 보증부월세”라고 말했다. 인근 T공인 관계자도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전세가격 상승분만큼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집주인이 꽤 있다”며 “자녀 학군, 사교육 등을 고려해 기존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세입자들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인들 사이에선 “굳이 전세를 택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월세를 일부 낀 형태로 내놔도 거래가 잘 돼서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매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임대차 시장이 ‘집주인 우위’로 급변했다”며 “내년부터 신규 입주 물량이 더 줄어들 예정이어서 세입자는 집주인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부동산 전문가들은 당분간 보증부월세 거래가 더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보유세가 추가로 오를 것으로 예상돼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12·16 대책에 따라 3주택 이상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의 종부세 세율은 최대 0.8%포인트 오른다. 명목상으로 집주인들이 세금을 내지만 결과적으로는 세입자가 부담하는 꼴이다.
보증부월세 지수 상승률 역대 최고
보증부월세 가격은 초강세다. 서울 송파구 잠실리센츠 전용면적 84㎡는 작년 12월 보증금 5억원, 월세 130만원에 계약됐다. 이 아파트는 9월만 하더라도 보증금 5억원, 월세 100만원 안팎에 거래됐다. 10월에는 같은 보증금에 월세가 110만원, 11월에는 120만원으로 올랐다. 전세 매물이 없다 보니 세입자 수요가 보증부월세로 몰리면서 시세가 올랐다.서초구 반포미도아파트 전용 84㎡는 작년 10월 보증금 2억9000만원, 월세 90만원에 거래되다가 12월 보증금 3억5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114㎡는 작년 10월 보증금 15억원, 월세 160만원에 거래됐다. 연말에는 같은 보증금에 월세가 250만원으로 상승했다.
강남권 보증부월세 가격지수 변동률은 역대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의 보증부월세 가격지수 변동률이 지난달 0.23%를 기록했다. 최근 4년 새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강남(0.79%), 송파(0.50%) 등 강남권이 상승세를 주도했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보증부월세 가격지수 변동률은 지난달 0.52%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치인 2015년 9월 상승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처럼 보증부월세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청약 대기 수요 증가, 대입 정시 확대 등으로 전·월세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까다로워진 전세대출도 세입자들이 보증부월세를 선택하는 요인이 됐다. 정부는 2018년 ‘9·13 부동산 대책’부터 다주택자들의 전세대출 수요를 규제했다. 반포동 B공인 관계자는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하고 값이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감당을 못하는 세입자가 많다”며 “대출도 안 되니 세입자들이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내는 계약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구민기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