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생충 관광지?…피자집 "찬성" vs 돼지슈퍼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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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촬영지' 보존 두고 다른 입장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을 두고 촬영지 업주들이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스카이 피자'를 운영하는 엄항기 씨(65)는 지난 12일 한경닷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자 주문량이 2~3배 늘었다"고 운을 뗐다. 영화에서 '피자시대'라는 상호명으로 등장한 이 피자집은 극 중 충숙(장혜진)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로, 박 사장네 집의 집사(이정은)를 내쫓기 위해 가족이 모의하던 곳이다.엄씨는 이어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변에 가게들이 생기고 이 일대가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실제 이 가게 근처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가게 바로 옆에 편의점이 하나 있을 뿐 근처에는 연립주택만 가득하다.엄 씨는 이러한 바람을 담아 가게 외부에 홍보물을 부착해 '기생충 촬영지'라는 사실을 적극 알리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현수막과 배너를 설치했다"면서 "가게를 같이 운영하는 남편과 아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내가 나서서 했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지난달부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방명록도 받고 있다. 엄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손님이 파파고로 번역을 하더니 번역기를 보며 한글로 방명록을 쓰더라"며 흐뭇해 했다.반면, 영화 속에서 기택(송강호)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친구 민혁(박서준)과 소주를 마셨던 '우리 슈퍼' 촬영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돼지 슈퍼'를 운영하는 김경순 씨(73)는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하지만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우리가 특별한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니 사진만 찍고 물건은 대형마트에 가서 사는 것"이라고 푸념했다.장사보다 더 깊은 고민도 털어놨다. 김 씨는 "(아현동) 근처는 온통 공장뿐인데 관광객이 와서 보고 갈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손을 내저었다. 이어 "집이 오래돼 곰팡이 냄새가 심하다"며 "이곳은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은 관광지를 조성한다는 이유로 재개발이 늦춰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면서 "재개발은 나와 이 지역 사람들의 숙원사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노량진 피자집 "주문 3배, 관광지 찬성"
▽ 아현동 슈퍼 "관광지? 동네 재개발부터"
▽ 가게 외관 홍보물 부착에도 '온도 차'
서울시와 마포구는 '돼지슈퍼'가 포함된 아현동 지역을 관광 상품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시는 서울관광재단과 함께 '기생충'뿐만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괴물', '살인의 추억', '옥자', '플란다스의 개'의 서울 촬영지를 엮어 관광 코스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계획에 따라 촬영지에는 안내 표지판과 포토존 등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마포구는 전날 '돼지슈퍼' 인근의 손기정로 32 일대를 원형보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지역의 돼지슈퍼와 가파른 계단길 등을 묶어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구는 전담 TF팀을 구성해 '기생충' 촬영지의 관광명소 조성을 위한 세부사항들을 검토하고 업무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