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라 믿었던 '규모의 경제'…이젠 '脫규모화'의 힘이 더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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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파워독서인도계 저명한 벤처투자자 헤먼트 타네자는 현재 제너럴캐털리스트파트너스 대표로 있다. 그의 최근작 《언스케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근본을 꿰뚫어 본다. 언스케일(unscaled)은 이런 변화를 함축하는 단어다.
언스케일
헤먼트 타네자·케빈 매이니 지음 /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더 큰 것이 언제나 더 낫다"는
20세기에나 통했던 명제
20세기 100년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스케일’이다. “더 큰 것이 언제나 더 낫다”는 지배적인 논리가 모든 곳에 통했다. 더 큰 기업, 더 큰 병원, 더 큰 정부, 더 큰 학교, 더 큰 미디어가 대세를 이뤘다. 작은 것이 자리를 차지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크기를 키우면 이른바 ‘규모의 경제’ 효과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시대였다.21세기 들어 예상치 못한 현상이 발생한다. 기업과 사회의 ‘탈규모화(unscaling)’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스타트업이 기존 대기업을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인공지능과 이를 활용한 일련의 기술이 ‘탈규모의 경제’를 통해 규모의 경제와 효과적으로 경쟁하도록 돕는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경제에서는 작고, 타깃이 명확하고, 기민한 기업들이 기술 플랫폼을 활용해서 시장에서 수십 년간 영광을 누려온 기업들과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예전에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해야 했던 것들을 무엇이든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로부터 컴퓨팅을, 소셜 미디어로부터 소비자 접근 경로를, 세계 외주 업체로부터 생산 설비를 임차할 수 있게 됐다. 기술이 대량 생산 및 대량 마케팅의 가치를 낮추고, 맞춤형 소량 생산과 정밀하게 표적화된 마케팅에 힘을 부여하고 있다.
저자는 상당 기간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언스케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런 통찰력은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저자 스스로 벤처투자를 하면서 내린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나는 벤처투자자로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면서 인공지능 혹은 로봇공학이나 유전체학 같은 다른 강력한 신기술을 활용해 규모화된 기존 기업들에서 사업과 고객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기업들에 자금을 대거나 그런 기업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탈규모화는 미풍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경제 분야를 해체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직관이다. 그는 탈규모화의 시작점을 2007년으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그는 “인공지능과 탈규모화의 힘이 20세기 경제를 분해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립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는 “대다수에게 성공의 열쇠는 개인 사업자로서 클라우드를 통해 많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판매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탈규모화의 시작’ ‘인공지능의 시대’ ‘미래산업이 바꿔 놓은 세상’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으로 구성된 책에서 통념을 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많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시대에 새로운 출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공병호 < 공병호TV·공병호연구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