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전도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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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연희 역 배우 전도연"역시 전도연!"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최근까지 전도연이 보여줬던 작품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선보인 작품이다. 극이 시작되고 1시간여가 지난 후에야 등장하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취객에게 맥주병을 내리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럽다. 전도연은 그런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내며 찬사를 자아낸다. 전도연은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부터 너무 재밌었다"며 "제가 중간부터 나온다는 것도, 해석해서 뭔가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모두 좋았다"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것도 전도연이었다. 정우성, 배성우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하나둘 씩 채워지는 가운데 윤여정 캐스팅을 직접 나설 만큼 준비 단계부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완성작을 본 후에는 "역시 이 작품을 선택한 게 제 인생에서 잘한 선택 중 하나"라고 평하며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올해 데뷔 30주년. 10대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데뷔해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등 독보적인 필모그라피를 쌓아 오고 있는 전도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통해 새로운 꿈과 도전을 보여줬다. ▲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직접 본 소감이 어떤가.
재밌게 봤다. 긴장도 많이 했다. 촬영도 중간부터 했고, 많은 캐릭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담길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다 됐더라. 감독님께도 '수고하셨다'고 말했다.
▲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돈가방을 탐내는 인간의 탐욕은 뻔한데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뻔하지 않아 좋았다. 속고 속이는 모습이 숨바꼭질같고 재밌었다. 그래서 읽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 그렇게 마음에 들어 윤여정 캐스팅도 직접 한 건가.
윤 선생님께 제가 전화를 먼저 했다. 숨바꼭질 같은 전개 속에 있는 또 다른 숨바꼭질 같은 스토리가 순자와 며느리의 관계라 생각했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 못 믿겠는, 며느리 말을 들으면 순자가 치매고, 순자를 보면 며느리를 못 믿겠고. 그런 관계를 누가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읽고 느낀 걸 말씀드렸고, (성대모사를 하며) "그럼 네가 하지 하니 그러니"라 하시더니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다. 감사했다. ▲ 멀티 캐스팅이었고, 신인 감독이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왔지만, 선택할 때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었을 듯하다.
제가 하겠다고 했어도, '과연 캐스팅을 하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마음을 비웠다. 인물이 많아서 캐스팅이 관건이었는데,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결정해놓고도 뿌듯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좋았다. 캐스팅이 됐을 때에도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쓴 분이니까,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믿고 싶었다.
▲ 베테랑 배우 전도연이지만, 이번 작품은 새로운 도전 아닌가. 등장도 중반부터 하고.
가장 큰 매력은 제가 처음부터 안 나온다는 거였다. 이야기도 재밌는데 전도연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는 게 매력이었다. '백두산'에도 잠깐 나왔는데 '전도연 닮은 사람이야?' 이런 반응이었다. 그정도만 해도 관객들은 새로워 하는거 같다. 사실 '백두산' 촬영을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연기 너무 잘한다'고 하더라.(웃음) 전 한 게 없는데. 그래서 영화를 봤다. 새로웠다.
▲ 많은 감독과 작업했는데, 김용훈 감독과는 어땠나.
영화 속에서 연희가 중간에 등장하는 것처럼 촬영도 중반부에 투입됐다. 사실 초반에 응원차 놀러갔는데 다들 부담스러워했다.(웃음) 촬영을 하면서 놀란 게 감독님이 현장을 즐기더라. 여유있어보여서 놀랐다. 그러기 쉽지 않을텐데. 시작부터 그랬는지 모르지만, 신인 감독님 같지 않았다. ▲ 캐릭터는 중간에 등장하지만 초반부터 휘어잡는다. 이전까지 캐릭터는 사연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연희는 그냥 '와, 진짜 세다' 이런 인물인데.
사연이 없어서 홀가분했다. 신났고, 재밌었다.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반가웠다. 뭔가 만들지 않아도 연희 자체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편했다. 비우고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딱히 이입할 필요도 없어서 상황 자체를 즐겼다. 소시오패스 같은 여자라 재밌었다. 부담도 없고 묻어갈 수 있겠구나 싶은, 진짜 감사한 시나리오였다.
▲ 배우 입장에선 자기만의 캐릭터 해석을 보여주는 게 연기력을 보여주는 기회 아닌가.
전 많이 했다.(웃음) 저도 새롭고 싶다.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싶고, 관객들도 새롭게 봤으면 좋겠고. 그게 연기를 계속하는 저에게도 즐겁지 않겠나. 피하려고 해도, 돌아오고 돌아와서 '아, 내가 해야하는 거구나' 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이제 그런 작품은 "안하겠다"고 할 순 없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 다 정해져 있어도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귀엽고, 살벌하고, 섹시한 모습까지 복합적이다.
정만식 씨가 그러더라. "누나 칼질 잘한다"고. 그런 장면도 한 번에 찍었다. 상대 배우까지 칭찬하니까 '나도 새로운 걸 잘하는 애구나' 싶었다.(웃음) 그런데 다리 부분은 대역이었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대역을 써본적이 없어서 낯설긴 했지만, 계속 함께 호흡하며 교감했다. 작은 움직임이 있다면, 그 대역이 연기하는 부분도 연희니까. 이전에도 노출 장면을 찍었다고 노출 연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저보다 감독님이 부담스러워 하신거 같더라. 대역 말씀을 먼저 해주셔서 감사했다.
▲ 정우성 배우는 첫 촬영에서 "전도연 씨가 내 연기를 보고 당황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 중심을 잡고 연기한 건가.
정우성 씨 연기를 보고 당황하긴 했다. 시나리오 상으로 태영이 이럴 거라 생각했지만 정우성 씨가 연기하는 건 또 달라 강렬했다. 함께 연기를 하면서 적응하는 게 필요한데 '오래된 연인 관계'라는 상황이라 저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첫 장면에서 "밥 먹고 얘기하자"라는 대사가 너무 힘들었다. 그걸 견뎌내니까 관계가 재밌어지더라. 그렇게 재밌을 때 끝나서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에 "코미디를 하자"고 했다. 전도연, 정우성 하면 멜로를 생각할 거 같은데 '우린 코미디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 실제로 본 정우성은 어떤가.
태영의 모습이 정우성 씨에게 있는 거 같다. 태영이라는 캐릭터를 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밑바닥까지 망가져야 하는 인물인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정우성 씨에게 그런 모습을 본 거 같다. 같이 연기하면서 더 궁금하고 재밌었다.
▲ 정우성과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계속 활동을 이어왔다. 그런데 왜 한 번도 안만났을까.
그러게 말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여배우와 멜로를 찍었길래 '제가 끝인가봐요' 라고 했더니 '이제부터 시작이죠'라고 하더라. 그렇게 잘 수습을 해준다. 사람들이 정우성 씨의 잘생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더라. 그분도 이제는 캐릭터처럼 받아들이는데, 그게 신기했다. 배철수 씨도 처음 정우성 씨를 봤는데 너무 잘생겼나 보더라. 잘생김을 자꾸 말하다 민망하셨는지 "전도연 씨가 봐도 잘생겼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잘생긴거 같다"고 답했다. ▲ 당당하고 주체적인 연희의 모습이 요즘 트렌드와 맞는다는 평이다.
개인적으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렇게까지 생각 못했다. 미란(신혜빈)과도 걸크러시 케미가 있다는 걸 영화를 보고 알았다.
▲ 전작을 홍보할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작품에 따라 목소리 톤도 달라지는 건가.
'생일'을 할 땐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조심스럽고, 답답하기도 하고. 작품의 영향을 받는 거 같다. '지푸라기'는 너무 편하다. 제가 실수하면 정우성 씨가 정리정돈을 잘한다. 홍보할 때 든든하다. 많은 배우들이 같이 하니까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 재밌기도 하고.
▲ 올해로 데뷔 30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잘살았구나.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하다. 제가 살아온 시간이긴 하지만 뭔가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다. 그 순간순간 지치지 않고 열심히 산 것에 스스로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 이전까지 연기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제가 의도치 않았던,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렇게 돼 버린, 그런 피로도가 있었다. 그런데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내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모르겠다. 앞으로도 그런 것을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저의 몫이라면 그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
▲ 영화는 돈 가방을 쫓는 내용인데, 배우 전도연에게 돈이란?
돈이 많다면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은 하지만, 돈이 절대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저의 욕망은 흥행과 일에 더 간절하다.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고 싶다. 제가 출연하는 비중이나 장르와 상관없이, 많이 하고 싶고, 하려 한다.
▲ '칸의 여왕'인데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 후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고.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대단하다고 말하기에도 역사적이다. '뭐라도 상 하나는 받겠지'라고 당연히 생각했음에도, 작품상에 호명된 순간 "악" 소리도 안나올 만큼 놀랐다.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로 만들어준거라, 봉 감독님께 축하한다는 말도 안나오더라.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가능성이 열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저뿐 아니라 다른 감독님과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줬다.
▲ 그 꿈을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 이루고 싶다"고 말했는데.
전 윤여정 선생님이 늘 궁금하고, 계속 보고싶다. 개인적으로 만나도 너무 즐거운 사람이다. 윤 선생님은 놀랍다. 그 연세에도 트렌디하고, 허물없이 작품을 선택한다. 팬으로서 응원한다.
▲ 롤모델 같은 건가.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저 자신을 스스로 국한짓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 없이. 나이들면 생각이 굳어지지 않나. 그게 걱정이 된다. 생각하고 있으면 작게라도 변할 수 있는거 아닌가. 그렇게 수용하는 자세로 나이들고 싶다.
▲ 해외에서 러브콜도 많이 받지 않았나.
칸에서 심사위원을 할 때에도 직접 "같이 해보자"는 말을 듣긴 했지만, 해외 작품 출연은 아직 잘 모르겠다. 언어적인 것도 너무 중요하고. '기생충'이 상을 받은건 그들이 자막을 보기 시작했다는 거고. 언어적인 문제가 연기력으로 커버될 수 있는 부분같진 않다. 그래서 생각도 안했다. 전 그냥 '대한민국에서 잘하자' 싶다.
▲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어떤가.봉준호 감독님이 저랑 하고 싶다고 했다.(웃음)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옥자'를 준비할 때 종종 만나서 얘기를 했다. 기사로 봉 감독님 차기작으라며 '옥자' 얘기가 나와서, 내심 '내가 '옥자'를 하나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아니더라. '옥자'에서 주인공 아역 배우가 저랑 '하녀'를 같이 해서 그 친구 얘기하고. 저는 사심이 있었는데, 봉 감독님은 아무런 목적과 사심없이 저를 만나신 거 같다.(웃음) 언젠가는 하지 않겠나. 저도 안해본 감독님도 많다. 박찬욱 감독님과도 못해봤다. 제가 이렇게 어필을 많이 한다. 저 굉장히 한가하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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