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급가속·급제동…청개구리 운전자의 '올해의 차' 심사 현장

▽ 자동차안전연구원 주행심사장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
▽ 4시간 반 걸려 6개 브랜드 18개 차량 평가
▽ 200km/h·전방주시 태만…일반 도로선 '불법상황' 연출

'끼이이이익!'

지난 13일 경기 화성에 위치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 180도 코너를 있는 힘껏 탈출하자 기자가 탄 빨간색 쏘나타 타이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달리던 인스트럭터는 무전으로 "빨간 쏘나타,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차량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결과였다.당시 KATRI에는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선정하는 '2020 올해의 차(COTY)' 최종심사 후보인 18대의 차량이 모였다. 지난해 출시된 현대차, 기아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볼보, 포르쉐 등 6개 브랜드의 대표선수였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한국자동차기자협회는 지난해 출시된 신차를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와 공도 주행으로 이뤄진 전반기 심사, 전용 트랙 주행으로 이뤄진 후반기 심사를 거쳐 18대의 최종심사 후보를 선정했다. 다양한 차량이 모인 만큼 차급이나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전장을 기준으로 가장 작은 차량은 4324mm인 BMW 스포츠카 Z4였고 가장 큰 차량은 5151mm인 BMW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7이었다. 가장 저렴한 차는 1965만원부터 시작하는 기아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셀토스였으며 가장 비싼 차는 2억5000만원에 달하는 벤츠의 AMG GT 63 S였다.최종심사에서는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주행시험장을 빌려 고속주행, 급선회, 비포장로 주행, 전방충돌방지 실험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동차 성능을 심사했다. 심사할 차량이 많은 탓에 평가 주행은 낮 12시부터 시작됐다. 심사 차량들은 9대씩 나눠 고성능 차량 1그룹과 대중 차량 2그룹으로 구분했고 참가 기자들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눠 각각 차량에 올라탔다. A그룹은 급선회와 고속주행 심사를, B그룹은 비포장로 주행과 전방충돌방지 기능 실험을 먼저 진행했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기자가 속한 A그룹은 1그룹 차량을 먼저 올라탔다. 우선 주행 중 급선회를 하는 상황에서 차량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조향성능로로 진입했다. 조향성능로 앞에서는 우렁찬 배기음과 타이어의 소음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주행 환경이 시속 60~90km를 오가는 만큼 조향성능로에 진입하면서 속도도 그 수준까지 높이기 위해 정지상태에서 급가속이 이뤄진 탓이다.

조향성능로에서는 일반적인 도로 환경에서 볼법한 코너부터 180도를 돌아 탈출해야 하는 구간까지 크고 작은 코너가 반복해 나타났다. 180도를 넘나드는 구간에서는 여차하면 차량이 미끄러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시험로 폭은 차 두 대가 지나갈 정도였고 시험로 밖은 1m가량 낮은 늪지대였기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그렇다고 속도를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량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성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환경에서 급선회가 이뤄진다면 이는 사고를 피하려는 긴박한 상황인 것이고, 제대로 조향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자연히 고속에서 차량이 방향 전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오버스티어·언더스티어를 연출해야 했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이어 고속에서 진동과 소음 수준을 확인하는 고속주회로 주행이 이뤄졌다. 직선 구간은 일반 도로와 같지만 곡선 구간은 원심력이 작용하지 않도록 최대 42도 각도로 휘어진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핸들을 틀지 않고 직진만 하면 코너를 통과할 수 있다. 차로에 따라 최저 속도가 정해져있는데, 경사각이 42도인 1차로는 180km/h 이상 속도로 달려야 했다.

첫 한 바퀴는 140km/h로 달리며 고속주회로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로는 앞 차량을 추월하지 않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점차 속도를 높여나갔다. 160km/h부터 풍절음이 커지는 차도 있었고 비교적 조용하게 유지되는 차량도 벤츠의 AMG GT 63 S나 BMW 7시리즈, 포르쉐 파나메라 등은 속도를 높일수록 풍절음이 사라지고 부릉대는 특유의 배기음이 실내 공간을 채워갔다.마음놓고 달릴 기회에 차량 속도도 점차 높아졌다. 일반 도로에서 불법인 것은 물론, 경주용 트랙을 주행하더라도 곳곳에서 등장하는 회전구간 때문에 200km/h 수준 속도를 유지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고속주회로는 직진 구간을 최대 250km/h 속도로 지속해서 달릴 수 있다. 3차로에서 시작한 주행은 점차 속도가 가장 빠른 1차로로 옮겨갔다. 눈 앞에서 도로가 솟아오르고 조수석 너머로는 4차로 바닥이 보이는 기이한 시야에 속도를 줄이고 핸들을 틀고 싶은 기분도 들었지만, 이는 큰 사고로 이어지기에 최선을 다해 억눌렀다. 고속주회로 곡선 구간에서는 뒷 차와의 추돌, 경사로에서의 추락 위험 등으로 인해 제동장치 사용이 금지된다.

이어진 심사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 32만㎡ 규모로 조성된 자율주행 실험도시 K시티로 옮겨졌다. 도심주행을 가정해 전방주시를 태만히 하다가 앞 차와 추돌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 상황에서 기자를 태운 차량이 앞 차를 들이받는지, 사고 위험을 감지해 스스로 정차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실험에서 주행속도는 안전을 위해 30km/h 이내로 제한됐다.

속도를 35km/h까지 높인 뒤 추돌각을 맞추고 핸들과 페달에서 손과 발을 뗐다. 앞 차 모형을 들이받기 직전에야 속도가 30km/h 아래로 내려갔다. 현대차와 기아차, 벤츠, BMW 등의 차량은 모두 추돌 경고를 띄우다 큰 제동음을 내며 스스로 멈춰섰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다소 속도가 높았던 기자의 주행을 본 제조사 관계자들은 "속도를 왜 더 높이냐"며 "성능에 자신은 있지만 만에 하나 들이받으면 어쩌나 손에 땀을 쥐며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볼보와 포르쉐는 자체 규정을 이유로 실험을 거부하거나 한국 법인이 해당 기능이 없는 차량을 제공한 탓에 제외됐다.

브랜드별로 제동 상황에서 차이는 있었다. BMW는 일반 운전자가 약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것 처럼 다소 부드럽게 제동했다. 운전자에게 큰 부담은 오지 않았지만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멈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앞 차와 가깝게 붙었다. 차량이 "위험해. 박는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벤츠 차량들은 한 순간에 모든 성능을 다해 제동을 걸었다. 운전석에서 보기에도 다소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제동이었지만, 몸에 전달되는 충격은 제법 강했다. 벤츠 차량들은 대체로 "앞 차 제대로 보랬지?!"라며 안전벨트로 운전자의 멱살을 잡는 느낌이었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SUV 차량에 한해 특수내구로 주행도 이뤄졌다. 뾰족한 돌기가 연속해 나있는 빨래판로, 노면이 물결모양으로 파여있는 장파형로 등에서 정상적으로 조향이 유지되는지, 앞좌석과 뒷좌석 충격은 어떤지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통상 SUV는 뒷좌석일 수록 승차감이 나빠지는 특성을 갖는다. 이에 착안해 BMW X7의 3열에 탑승했다.

결국 장파형로에서 천장에 머리를 찧었다. 운전자는 재미있는 출렁임 정도로 여겼지만, 3열에 앉은 기자는 몸이 좌석 위로 붕 떠버린 것. 그 이상의 사고를 막아준 안전벨트의 소중함도 깨닫는 시간이었다. 기자와 X7에 동승했던 기아차 관계자는 "쿵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머리 괜찮느냐"며 웃어보였다. 기아차는 3열이 없는 모하비 더 마스터를 심사에 제공했다.12시 시작한 심사는 오후 4시 반 즈음이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는 이날 최종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20일 2020 올해의 차 시상식을 개최한다.
지난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올해의 차 최종심사가 열렸다. 사진=조상현 한경닷컴 기자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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