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문 대통령이 이런 말도…"감세할테니 투자해달라"

감세는 경기부양 주체가 민간
경제수준 높은 국가일수록 선호

재정확대로 성장·세수 놓친 정부
법인세 인하로 정책실패 만회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법인세 인상, 재산세 인상, 종합부동산세 인상, 상속세 인상…. 현 정부 출범 이후 숨 가쁘게 발표된 증세 스펙트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모든 경제활동이 마비될 무렵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가 들렸다. “감세할 테니 투자해 달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이후 각국의 위기 극복과 경기 대책은 ‘재정’으로 빠르게 옮겨지는 추세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실물경기가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여건에서 양적 완화 등을 통해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모든 자산 가격의 거품이 우려돼 금융완화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전통적인 ‘케인지언의 총수요 진작책’이다. 다른 하나는 감세를 통해 경제주체의 의욕을 고취시켜 성장률과 재정 수입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1980년대 초반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추진한 ‘레이거노믹스’(일명 공급중시 경제학)다.

미국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계기로 유럽은 금융완화정책을 재정정책으로 보완해 나가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1단계 ‘금융완화’에서 2단계 ‘재정정책’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도 작년 말까지 연연했던 금융완화에서 재정정책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종전에 많이 사용했던 ‘재정지출’보다 ‘감세’에 더 주력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케네스 로코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같은 재정적자 축소론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국채 소화 과정에서 상승한 금리로 민간소비와 투자가 감소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큰 정부론’이 불가피하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국가일수록 큰 정부에 따른 정책실패 비용은 시장실패 비용보다 몇 배나 크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경기부양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작은 정부론’에 부합돼 경제발전단계가 높은 국가일수록 선호한다.

현 정부는 경기부양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방향은 맞다.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주로 증세로 마련하겠다는 점은 다른 국가와 구별된다. 증세가 경기 회복과 재정수입에 도움이 될지 여부는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근거였던 ‘래퍼 곡선(Laffer’s curve: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 교수가 주장한 세율과 세수 간 관계를 나타낸 곡선)’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래퍼 곡선은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인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인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다. 표준 지대에서는 증세를 하면 성장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세수가 증가하지만 비표준 지대에서는 경제 효율을 떨어뜨리는 세율을 낮춰줘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미국을 필두로 감세를 추진하는 대부분 국가는 세율이 비표준 지대에 놓여 있어 경제주체의 인센티브를 제고하는 것이 경기부양과 세수 확대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증세로 일관해 왔다. 감세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동떨어져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증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인세, 소득세 등의 적정세율이 얼마일까’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현재 세율이 적정세율 밑이라면 성장과 세수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반대로 적정세율보다 높으면 경기둔화, 세수감소 등과 같은 정책 실패 비용이 크게 나타난다.

결과를 보면 2018년 4월부터 경기가 침체되고 작년에는 세수마저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제주체가 세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 대통령의 감세 발언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너무 ‘증세’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법인세만이라도 내려준다면 집권 전반기 실패했던 경제정책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